가을을 멀리서 보면 봄 다시 무기한 재택 근무가 시작됐다. 점심에 시간을 붙여 오프하고 혼자 산책을 다녀왔는데 시력이 나쁜 눈으로 흐릿하게 보니 개나리처럼 보이는 노란색이 가득했다. 가까이서 보면 거뭇하게 시든 잎이지만. 햇볕 아래 멀리서 보니 참 예뻤다. 겨울을 앞둔 가을이지만 햇살 아래 봄처럼 빛나는 날이 있다. 편찮으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다. 시들시들하게 느껴지는 내 삶도 멀리서 보면 저렇게 예뻐 보일 수도 있겠구나. 나/현재를 찍다 2020.11.27
안수찬,전종휘,임인택,임지선 - 4천원 인생 임계장 이야기가 몇 십년 뒤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했다면, 4천원 인생은 현재를 재고하게 했다. 완독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계속 여운이 남는다. 한겨례 사회부 기자님들의 살아있는 기록물에 생각이 깊어지다. 개인의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풀면 된다. 시스템의 문제는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태어남을 당한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부모는 해야 한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삶은 고통이다. 누린 것들을 비관으로 기억하지 말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 기사 전문을 읽을 수 있는 링크 : http://h21.hani.co.kr/arti/SERIES/46/?cline=1 감상/책, 내 인생의 동반자 2020.11.20
나쁜 것만 있지 않다. 리퍼 기기가 도착하는데 3일에서 한 달까지 걸린다더니 수리 맡긴 바로 다음날 입고 되었다 연락이 왔다. 점심 즈음 충동적으로 퇴근하고, 패드 수리 지점이 있는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일주일 전부터 재택을 포기하고, 전일 출근 중이다. 국가가 코로나 대응 단계를 개편한 것이나, 회사가 전직원 출근 지침을 단호하게 전달하는 것이나, 가만 보면, 확진자 백 명 전후에서는 모두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재택 가능 항목에 해당되어 재택을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추울 때 시작해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온 지금 내 안의 피로도도 상당히 많이 쌓여, 상사에, 동료들에, 재택하겠다 부탁하고 양해 구하고, 집에서도 일 열심히 한다 증명하기 위해 동동거리는 것들이 모두 지겨워서, 하고 싶.. 나/상념의 문서화 2020.11.07
욕심을 제어하는 법. 기대와 다른 결과를 보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기대한 내가 잘못 이려니 해도, 반복되는 생각에 잠식되며 마음은 제어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바라는 것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수십가지 적어놓고 우선 순위에 동그라미를 친다. 정말 중요한 것들에 이상이 없다면, 보너스는 드렁칡인거다. 분노하고 서운할 때 있지만, 조심 조심 되세긴다 생채기 여러 군데 긁혔지만, 품고 있는 건 지켰노라. 너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중심이 뭔지 잊지 않고 한 발자국씩 걷다보면, 결국 다 지나간다. 몰아치던 혹독한 것들도 지나고 나면 내 삶에 한줌도 안 되는 것들이더라. 나/상념의 문서화 2020.09.27
냉장고 근무시간이 많이 오버되는 것 같아 오전에 두 시간 오프하고 산책을 다녀왔다. 샤워 후 식사를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문득 그 내용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유, 커피, 주스, 탄산수, 샌드위치 용 스프레드 여러 개, 흑당시럽, 생크림 스프레이, 초코크림 스프레이, 생선 용 고추냉이, 육류 용 고추냉이, 각종 소스들. 식사에 필수가 아닌 식자재가 다양하게도 들어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네 집 식탁 위에 늘 있던 캘리포니아 산 호두가 부의 상징 처럼 느껴지고 참 부럽고, 탐이 나고 그랬었는데, 우리 애들은 먹을 걸로 친구 집을 부러워하지는 않겠구나 싶으니까 제법 성공한 삶 같은거다. 가진 걸 하찮게 여기고 나를 작게 느끼고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기고 못 하고 있는 것만 심각하게 느끼는 증상이 냉장고 덕분에, .. 나/상념의 문서화 2020.09.17
재택근무 7개월 째. 중간에 회사 정책이 전면 출근으로 바뀌면서, 혼자만 재택을 유지하기 어려워, 출근일을 늘리며 고민하고 있던 찰나,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가 되며 전사 원격 근무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7개월째 재택근무 중이다. 아이들 방에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두고, 오전에 온라인 수업할 때는 큰 애를 옆에 두고 있으나, 가능하면 얼른 애를 놀라고 내쫓고 혼자 일하곤 한다. 아침에 부모님께서 일찍 와주셔서 아이들 끼니 챙겨주시는 덕에, 낮에는 그냥 방콕 열일 모드로 지낸다. 아이 병원 진료로 휴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점심 시간에 애 데리고 동네 소아과 다녀와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작은 애는 어쩌다 농가진이 생겼는데, 항생제 먹여 다 치료해놓으면 재발하고 또 재발해서 벌써 세 번째를 치.. 나/상념의 문서화 2020.09.05
조정진 - 임계장 이야기. 일을 하며 수많은 감정들에 휘청거릴 때마다, 몇 살까지 회사를 다니게 될까 종종 생각한다. 20대에 일을 시작할 때는 마흔까지 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이상을 고민한다. 정년퇴임이란, 지금 세대에게는 전설 속 유니콘 같은, 수많은 인내와 끈기와 노력의 산물인 존경의 대상이다. 이 책은, 책상 앞에서 60에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성실하게 근무하신 지식인인 가장이, 좋지 않은 운이 겹쳐, 은퇴 후 다른 형태의 경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맞닥뜨린 야생에 대한 기록이다. 고된 노동과 정신적인 고난 사이에서도 저런 기록물을 일지로 남기실 정도의 분이라면, 정말 그 시대의 엘리트라고 생각한다.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각오 이상이었다. 가족들이 부디 슬퍼하지 말길 바란다는 맺음.. 감상/책, 내 인생의 동반자 2020.09.01
오래 가는 것은. 호감과 의아함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감정이 몰아치는 순간이 있더라도 길어봤자 1-2년, 결국 의아함만 남게 된다. 오래 가는 것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들 뿐이다. 욕심 열정 이런 것들 다 차곡차곡 접어 결국은 흩어진다. 의무, 책임감. 역할을 다 하는 것이 결국은 나의 사명일지다. 나/짧은 혼잣말 2020.07.25
아주 오래된 농담 - 박완서 아이를 교실에 들여 보내고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아들 셋을 시댁에 보내고 이불 세탁을 돌리며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종이책을 완독했다. 병을 알려주어 투병을 하게 할 것인지, 병을 숨겨 절망을 피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올초에 치열하게 고민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알리는 것이다. 치킨박이 두려움에 내린 결정을 공감하지는 않지만 인정한다. 사람은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연극에 둘러싸여 비극에 처한 영묘는 결국 영화처럼 탈출하지만, 아빠 같은 의사 오빠, 미국 부자 오빠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불행이 비현실적이듯, 결말 역시 비현실적이다. 현금과 수경이 대조적인 인물상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주어진 상황 내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이므로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족이 힘이 되지만 .. 감상/책, 내 인생의 동반자 2020.07.18
100을 깎아 나가는 중. 100을 깎아 0을 만들고 싶은데 사실 0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차례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아마도 지금은 20-30쯤. 나/짧은 혼잣말 2020.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