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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는 것.

한 달 휴가 중 벌써 삼 주가 지나가고,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다. 일은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로 했지만, 육아휴직, 입학 뒷바라지 등 목적이 없는 장기 휴가는 처음이다. 그간 삶의 패턴을 볼 때, 공부도 일도 집안일도, 하나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 내면의 압박에 쫓기겠지만, 조급해 말고, 잘 쉬어보자는 목표를 갖고 시작했는데, 제법 잘 지낸 것 같다. :) 매일 맛있는 것 해먹고, 해먹이다 문득, 아 우리집이 정말 맛집이구나 깨달았다. 휴양지 한 달 살기가 이런 식이겠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잘 못 먹는 편이라 지난 여름 상당히 줄었던 체중이, 행복한 휴가를 보내며 다시 올라왔다; 매일 너무나무 맛있다;;; 아이들도 내일은 엄마가 어떤 맛있는 것을 해줄 지 기대된다며 아 배고파졌다~~ 하며 잠든..

카테고리 없음 2021.02.23

아빠의 아빠가 됐다 - 조기현

최근 읽은 부류의 책들 중 가장 미래지향적인 글이다. 전에 대략 살펴보았을 때, 읽으며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아 미뤄두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갔다. 내용 자체의 fact는 암담하지만, 서술하는 저자는 시선은 객관적이고 해법을 찾으려 나아가고 있다. 순응이 아니라 투쟁을 하는 저자의 기질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고, 꿈과 미래에 대한 에너지가 있는 20대 나이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20대의 나는, 사회적인 시스템과 기부,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된 활동도 활발히 참여했었다. 그러나 30대를 지나 40대로 가며, 내 앞가림과 가족의 돌봄 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오히려 사회적인 기여도는 퇴보해 있다. (세금은 전보다 많이 내고 있다...) 돌봄을 개인의 영역으로..

한 달 휴가.

2020년 휴가를 하루도 못 썼다. 재택이 무색하게 과로하고 초과근무하고 있던 상황이라, 업무 중에 휴가를 쓸 수가 없었다. 돈으로 돌려주지 않는거라 소진을 해야겠기에 반 년 전부터 내년 2월에 쉬겠다고 이야기하고 업무 페이스를 조율했다. 중요한 업무는 1월까지 마무리하고, 3월에 다시 시작하는 걸로 정리했다. 왜 휴가를 못 썼을까. 일정은 내 입으로 정하는 건데 늘 바쁘게 달리는 건 업무 습관이라 그렇다쳐도. 뭐가 달랐을까. 돌이켜보면, 큰 애가 태어난 11년 전부터 휴가는 애들이 아플 때, 혹은 아이들을 맡긴 기관에서 부를 때를 위해 아껴야 하는 소중한 것이었다. 큰애 어릴 때처럼 애가 일이주 폐렴으로 입원하면 집안이 폭탄맞기 때문에 휴가는 늘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작년은 애들이 안..

엄마, 차라리 때려.

둘째는 여러 번 훈육해도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내 기준에 꽤나 심각한 것인데, 말로도 타이르고 엉덩이도 때려보고 여러 번 했는데. 오늘 저녁에 또 그랬다. 성질이 욱 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때리고 싶지는 않아서, 엄마는 너무 아프다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지 말자 타이르고, 아이는 미안하다고 울고 한바탕 정리를 하는 중에 다시 또 그러는 걸 보고,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랑 들어가 자라고, 엄마는 이따가 잘거라고. 오늘 네가 말을 안 들어서 같이 자지 않을 거라고 하니, 아이는 통곡하고, 옆에서 눈치보고 있던 큰애가 말한다. “엄마, 차라리 때려. 지금 엄마의 그 말은 쿡 찌르는 것 같아. 내가 애기 때 기억이 있어서 아는데, 애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랑 늘 같이 있어서..

마음의 감기를 치료하는 귤 꽃.

얼마 전, 사고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감기가 왔다. 아이들 챙기며 기다려주던 신랑이 해줄 거 없냐고 묻기에, 수면 부족과 두통이 나아질까 싶어 귤을 까달라고 부탁했다. 소파에 누워있는데 들려오는 신랑의 다급한 목소리. 자기야 빨리 먹어. 애들이 자꾸 집어 먹어서 없어진다! 애들도 먹고 나도 먹고 뭐 어때 하면서 식탁에 다가가 보니 자꾸 이가 빠지고 채워지는 귤 꽃이 피어 있었다. 놓은 모양이 예쁘니 한동안 귤 안 먹던 애들이 자꾸 집어먹고 신랑은 모양을 완성해서 주고 싶어서 다시 채워넣고 그 긴박한 순간이, 일상이, 감사하고 소중해서 웃음이 났다.

가을을 멀리서 보면 봄

다시 무기한 재택 근무가 시작됐다. 점심에 시간을 붙여 오프하고 혼자 산책을 다녀왔는데 시력이 나쁜 눈으로 흐릿하게 보니 개나리처럼 보이는 노란색이 가득했다. 가까이서 보면 거뭇하게 시든 잎이지만. 햇볕 아래 멀리서 보니 참 예뻤다. 겨울을 앞둔 가을이지만 햇살 아래 봄처럼 빛나는 날이 있다. 편찮으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다. 시들시들하게 느껴지는 내 삶도 멀리서 보면 저렇게 예뻐 보일 수도 있겠구나.

안수찬,전종휘,임인택,임지선 - 4천원 인생

임계장 이야기가 몇 십년 뒤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했다면, 4천원 인생은 현재를 재고하게 했다. 완독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계속 여운이 남는다. 한겨례 사회부 기자님들의 살아있는 기록물에 생각이 깊어지다. 개인의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풀면 된다. 시스템의 문제는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태어남을 당한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부모는 해야 한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삶은 고통이다. 누린 것들을 비관으로 기억하지 말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 기사 전문을 읽을 수 있는 링크 : http://h21.hani.co.kr/arti/SERIES/46/?clin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