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책, 내 인생의 동반자 69

주름 - 파코 로카

나이듦에 따른 몸과 뇌에 오는 노화. 요양원 생활을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만화로 표현했다. 슬픔이나 괴로움 우울함 보다는 아쉬움의 감정이 더 진하게 남은 것은 기억이 단편적으로 끊어진 필름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 부모님과 사돈어르신과 식사를 하였는데 일흔이 되신 분들이 사십대인 우리에게 그 때는 한창이다 젊다 사오십대에 운동을 해 두어야 한다 조언해 주셨다. 원래 미리 사서 고민하는 성격이지만 부모님의 노후, 나의 노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마지막 즈음이 너무 강렬하고 생생하지 않도록 많이 잠들고, 자주 끊기고, 몽환적인 세상이 되는 것은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마취제일까.

나는 커서 내가 됐다.

웹서핑 중에 유머 글로, 너는 커서 뭐든지 될 수 있어 하는 말에 이모는 커서 뭐가 됐어? 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조카 크레파스 글을 보고 웃다가 나도 클 만큼 컸는데, 커서 뭐가 됐나 생각해봤다. 직장인. 엄마. 아내. ... 삼십대 초반에 동창 친구 하나가 술마시다 “중학교 때의 너는 나중에 커서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았어. 근데 대학 가서 졸업하고 회사 다니고 결혼하고 아기낳고 살고 있구나. 생각보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내가 그 친구에게는 그렇게 보였구나 재미있으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라는 위화감이 동시에 들었었다. 어디선가 송곳같이 뛰어나가고 싶어도, 일상을 지키기 위해 쏟아붓는 인내와 노력의 양이 만만치 않다. 자라서 ..

아빠의 아빠가 됐다 - 조기현

최근 읽은 부류의 책들 중 가장 미래지향적인 글이다. 전에 대략 살펴보았을 때, 읽으며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아 미뤄두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갔다. 내용 자체의 fact는 암담하지만, 서술하는 저자는 시선은 객관적이고 해법을 찾으려 나아가고 있다. 순응이 아니라 투쟁을 하는 저자의 기질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고, 꿈과 미래에 대한 에너지가 있는 20대 나이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20대의 나는, 사회적인 시스템과 기부,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된 활동도 활발히 참여했었다. 그러나 30대를 지나 40대로 가며, 내 앞가림과 가족의 돌봄 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오히려 사회적인 기여도는 퇴보해 있다. (세금은 전보다 많이 내고 있다...) 돌봄을 개인의 영역으로..

안수찬,전종휘,임인택,임지선 - 4천원 인생

임계장 이야기가 몇 십년 뒤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했다면, 4천원 인생은 현재를 재고하게 했다. 완독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계속 여운이 남는다. 한겨례 사회부 기자님들의 살아있는 기록물에 생각이 깊어지다. 개인의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풀면 된다. 시스템의 문제는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태어남을 당한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부모는 해야 한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삶은 고통이다. 누린 것들을 비관으로 기억하지 말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 기사 전문을 읽을 수 있는 링크 : http://h21.hani.co.kr/arti/SERIES/46/?cline=1

조정진 - 임계장 이야기.

일을 하며 수많은 감정들에 휘청거릴 때마다, 몇 살까지 회사를 다니게 될까 종종 생각한다. 20대에 일을 시작할 때는 마흔까지 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이상을 고민한다. 정년퇴임이란, 지금 세대에게는 전설 속 유니콘 같은, 수많은 인내와 끈기와 노력의 산물인 존경의 대상이다. 이 책은, 책상 앞에서 60에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성실하게 근무하신 지식인인 가장이, 좋지 않은 운이 겹쳐, 은퇴 후 다른 형태의 경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맞닥뜨린 야생에 대한 기록이다. 고된 노동과 정신적인 고난 사이에서도 저런 기록물을 일지로 남기실 정도의 분이라면, 정말 그 시대의 엘리트라고 생각한다.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각오 이상이었다. 가족들이 부디 슬퍼하지 말길 바란다는 맺음..

아주 오래된 농담 - 박완서

아이를 교실에 들여 보내고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아들 셋을 시댁에 보내고 이불 세탁을 돌리며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종이책을 완독했다. 병을 알려주어 투병을 하게 할 것인지, 병을 숨겨 절망을 피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올초에 치열하게 고민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알리는 것이다. 치킨박이 두려움에 내린 결정을 공감하지는 않지만 인정한다. 사람은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연극에 둘러싸여 비극에 처한 영묘는 결국 영화처럼 탈출하지만, 아빠 같은 의사 오빠, 미국 부자 오빠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불행이 비현실적이듯, 결말 역시 비현실적이다. 현금과 수경이 대조적인 인물상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주어진 상황 내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이므로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족이 힘이 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