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보물과 만나다 346

람이 - 중1

1. 키가 커졌다. 발도 커졌다. 이제 키도 발도 나보다 크다. 겨우 중1에 따라잡힐줄은 ㅜㅜ 2. 신랑이 미국 출장으로 출국한 날, 회사에서 오랜만에 과음을 했다. 위스키에 연태에 해롱거리며 소파에서 잠드는 귓가로 아빠 없는데 혼자 자기 무섭다는 둘째의 칭얼거림과, 어휴 오늘만 같이 자 준다는 큰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보니 안방에서 둘이 자고 있다. 자기 방에서 문 꼭 닫고 혼자 자는 아이인데… 아빠 없고 엄마 술에 취해 쓰러지니 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구나. 출근 준비 다 하고 차 키를 들고 일어나는데 이대로 운전하면 음주운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휴가를 내고 다시 누웠다. 방학이라 늦게 일어난 아이가 엄마 괜찮냐길래 해장라면 끓여줘~~ 하니 가장 예쁜 파와 계란를 넣는다고 말하며 끓여준다..

람이 - 초졸. 사랑과 확신만 주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교복을 맞췄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유혹을 이기기 어려워하며 공부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혼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너그럽게 감싸주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모른척해야 방치가 아닌 부드러운 훈육이 되는 걸까. 결정과 통보, 처분, 때로는 넘어가기. 선과 선을 타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사랑과 애정표현, 몸과 마음의 스킨쉽은 유지하려 한다. 계속 아이와 사이 좋고 싶다.

서울이 7세 - 우리 돈 필요해?

일요일에 밀린 일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평일에 정리할 시간이 없는 23년 업무 성과 정리와 개인별 피드백, 24년 업무 계획 및 리소스 분배. 서울이가 찡찡거리며 들어와 묻는다. “엄마 왜 일요일에 일해? 왜 일요일에 해야 돼?” 일이 많아서~~ 라도 해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서 묻는다. 차가운 발을 만져달라며 감겨 오는 걸 안아 어루만지며 무의식중에 신랑에게 하는 식으로 대답했다. “엄마 일요일에 일 한 것도 돈 나와~ 괜찮아.” 그러자 아기가 묻는다. “엄마 우리 돈 필요해?” 돈이 필요한 건 아닌데... 필요한 게 맞기도 하고... 수면 양말 신겨 담요 덮어 잠시 안아주니 바로 잠든다. 감기에 약기운에, 엄마 찾아 안아달라고 오는 아기. 잠든 아기 내려놓고 마저 일하러 왔다. 음... 일단은 이..

수학 학원과 만화 카페

6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수학 학원을 등록했다. ebs 동영상 강의를 보며 만점왕을 성실하게 푸는 아이지만 채점이 밀리는 부모를 둔 탓에 케어는 잘 되지 않았다. 수학을 잘 한다는 아이의 자신감이 중학교에 들어가 선행한 아이들을 만나 꺾이지 않았으면 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도 시도하게 하려 사교육을 활용해왔지만 사실, 잘 하는 걸 더 잘 하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수학 학원과 영어 학원 시간표가 충돌해서 미술 피아노 기타 드럼 수업까지 섬세하게 조정하다보니 혼자 시간표를 관리하는 대학생이 되는 날을 고대하게 됐다. 집에 와서 놀고 싶은데다 시간 분배가 서툴러 새로 늘어난 숙제들을 자정까지 푸는 아이를 보며 슬슬 만화카페에 데리고 가야겠다 싶었다. 알라딘도 도서관도 많이 가서 새로운 책이 거의 없고..

람이 13세 - 혼자 자다.

백 살 때까지 옆에서 잔다던 아이. 억지로 내쫓고 싶지 않아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고 있었는데, 태어나서 계속 넓게 굴러다니면서 자던 습관이 있어 신랑과 나는 아이들에게 이리 맞고 저리 맞고 찔려서 밤 중에 두세번씩 깨며 수면 부족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이러해서 힘들다 알려주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자 하던 참에 두 번째 코로나가 왔다. 둘을 격리 해 재우느라 아이와 아이 방에서 잤다. 그렇게 일주일간이 지나고 나니 안방이 아닌 본인 방에서 자는 것에 익숙해지고, 동생과 투닥거리기 싫어 떨어지고 싶은 마음과 본인이 굴러다녀 엄마 아빠와 부딪치는 미안함이 섞여 드디어 오늘부터 혼자 자겠다고 선언하고 들어갔다. 이러다 중고등학생까지 같이 자게 되는 걸까 하던 내게 신랑은 고학년 되면 혼자 ..

성공의 경험 누적.

아이는 보수적이고 관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던 것을 그만두는 것도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저학년 때는 강권하며 밀어붙여야만 시작할 수 있었지만,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고 재미도 있는 경험이 쌓이며, “너는 뭐든 잘 할 수 있다.” 라는 설득이 통하기 시작했다. 이번 방학 특강으로 새로운 종류의 운동을 시작했다. 설득과 대화의 과정이 한참 필요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흔쾌히 주 3회 하겠다고 했다. 첫 주는 배에 멍도 들고 이런 저런 시행착오가 있는 것 같더니 둘째 주를 마무리 하며, 드디어 물구나무서기도 했다며 “지금까지 한 운동 종류 중에 제일 재미있어!” 라고 했다. 감개무량하고, 솔찬히 들어간 수강료가 아깝지 않았다. 새로운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할 수..

국기원 승품 심사

코로나 때문에 2년 넘게 재택근무에 집에만 있었다. 아이도 학교에 거의 안 가고, 학원은 아예 중단했다.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아이는 올해들어 다시 태권도를 시작하며 불편해 했다. 달래고 윽박지르고 다시 보내며 걱정했지만, 늘 그렇듯이 아이는 다시 잘 적응해주었다. 큰 체육관, 천장이 한없이 높은 공간에서 압박감이 있을터라 실수를 할 법도 한데, 침착하게 준비한 것들을 다 해냈다. 연습 때보다 80% 밖에 못 했다며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칭찬을 폭풍처럼 쏟았고, 아이도 성취감을 느낀듯 하다. 3일 뒤에도 심사 받던 장면이 생각 난단다. 본인도 도복을 입고 형아 응원하러 가고 싶다는 거 띠만 매기로 합의 본 둘째도 내년에는 승품 심사를 가겠지. 1품은 대략 그 정도 나이대 애들이 많더라. 내 ..

람이 12세 - 학원 다니는 게 낫겠어.

입시와 학원의 세계에 넣기 싫어 질질 끌어왔다. 본인도 공부하는 학원은 가기 싫다 했고, 코로나 팬데믹에 겹쳐, 수학 영어는 지금껏 집에서 했다. EBS 인강 듣고, 문제집 풀고 어찌저찌 5학년까지 도달했다. 신랑과 나는 점점 더 나이 들고, 안팎으로 업무가 많아진다. 종일 회의를 하기에 퇴근 후에는 뇌와 입이 쉬고 싶어한다. 채점하고 틀린 문제 봐주고 집중했나 확인하는 것들을 지속할 기력이 없다. 주말에는 그저 같이 놀고 쉬고 싶다. 책장이 꽉 차서, 주변에 쌓아둘 정도로 좋아하는 책도 많고 전자기기로 이래저래 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우리 어린이가 드디어 선언을 하셨다. 본인의 방에는 본인을 유혹하는 것들이 많다며, “엄마. 이제 학원 다니는 게 낫겠어.” 사실 신랑도 나도 이제 슬슬 gg를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