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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아.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 이득을 더 얻기 위해 혹은 충동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보다 못 견디겠는 것이 아니라면 지속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이러한 생각들은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봤을 때 많은 것들을 이뤘기 때문인지도. 결과론적으로 나는 지금 괜찮으니. 머무르고 지속했던 선택들을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순간 순간 최악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놓지 않고 버티다보면, ‘오히려 좋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 크고 작은 돌부리들에 멈칫하고 넘어졌기 때문에 태풍을 피하고, 지름길과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더 잘하려, 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작은 즐거움과 보람에 집중해서 기쁨을 찾는다 예상대로..

람이 12세 - 학원 다니는 게 낫겠어.

입시와 학원의 세계에 넣기 싫어 질질 끌어왔다. 본인도 공부하는 학원은 가기 싫다 했고, 코로나 팬데믹에 겹쳐, 수학 영어는 지금껏 집에서 했다. EBS 인강 듣고, 문제집 풀고 어찌저찌 5학년까지 도달했다. 신랑과 나는 점점 더 나이 들고, 안팎으로 업무가 많아진다. 종일 회의를 하기에 퇴근 후에는 뇌와 입이 쉬고 싶어한다. 채점하고 틀린 문제 봐주고 집중했나 확인하는 것들을 지속할 기력이 없다. 주말에는 그저 같이 놀고 쉬고 싶다. 책장이 꽉 차서, 주변에 쌓아둘 정도로 좋아하는 책도 많고 전자기기로 이래저래 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우리 어린이가 드디어 선언을 하셨다. 본인의 방에는 본인을 유혹하는 것들이 많다며, “엄마. 이제 학원 다니는 게 낫겠어.” 사실 신랑도 나도 이제 슬슬 gg를 치..

2년 치 여행 소진.

여행 첫 날 큰 애의 발 부상으로 응급실 다녀오고, 물도 닿으면 안 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와 이후 모든 일정 스톱하고 숙소에서 머물렀다. 아침 늦도록 누워 뒹굴거리다 바삭거리는 침구와 하늘,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던 스플리트의 옥탑방을 떠올렸다. 비 일상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일상적인 휴식을 취하는 지극히 현지인스러운 시간. 바닷가 마을에 가서 해산물도 바다도 챙기지 못 했지만 그저 함께라 좋았고, 바쁘지 않아 좋았다. 팔뚝의 흑염룡이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발 부상자를 모시고 귀환 직전 뒷좌석에 둘째가 게워 올린 것들을 수습하러 갓길에 정차해 생수로 아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히며 상황 파악 못 하는 흑염룡에게 소리도 여러 번 질렀지만 그래도 더 큰 사고 안 나고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외로움.

아이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도 늘 외로웠다고 말해주었다.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해서도 종종 외로웠고 너희가 태어나 너무 바빠지면서 외로울 틈이 없어졌다고. 신랑을 플스와 위쳐의 세상에 남겨두고 아이 둘을 킥보드에 태워 서점으로 산책 가다가 좁은 길에서 서로 내 손를 잡겠다고 다투는 아들 둘을 보며 짜증내다 체념을 하고 또 다시 으르렁거리는 것을 보며 이 둘이 부모의 사랑을 경쟁하는 형제이기에 결국 생길 수 밖에 없는 결핍이 있을 거고 내가 노력해도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결해줄 수 없을거고 그렇다면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다. 고딩 때 젊은 베르데르의 슬픔에 빠져있었다던 신랑과 내 성향을 받은 아이라면 외로움과 공허를 결국 갖게 될거고 그것은 아이가 부딪치고 성장해가며 깨야 ..

적은 내 안에.

막상 꼽아보면 주변은 선의로 가득하다. 호의와 애정의 감정적인 보상에 물리적인 기쁨도 적지 않다. 1. 아이가 오랜만에 사흘째 40도를 찍어 애닯게 미온수에 가재수건 적셔 닦아가며 챙기다 아이 상태가 호전된 뒤 바로 쓰러졌다. 오한에 고열에 두통에 시달리며 누워 있는데 아이가 주섬주섬 물그릇과 천을 가지고 온다. 엄마도 기화열로 편해졌으면 좋겠다며 똑같이 닦아준다. 내 보물. 이제 성인 남성 95 사이즈가 낙낙하니 맞는다. 2. 식사 편히 해결하라고 보내주신 모바일 상품권 금액이 커서... 과분하다 메세지 하니 “ 입도 많으니까 ㅋㅋ 밥 잘 챙겨드시고 얼른 나으세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 집에 입이 많긴 했다;;; 3. 온 가족이 시간차 확진으로 앓았는데, 정신력으로 버텨낸 신랑이 의지가 되고 ..

연휴.

토일,월휴가,화삼일절 로 4일 짤막한 연휴다. 1. 엄마랑 다섯시간 정도 이곳저곳을 다녔다. 운전수, 말동무, 손 잡고 걷기, 몇 가지를 사드렸다. 딸이 있어 정말 좋다는 어머니께, “엄마 어쩌지 나는 딸이 없는데.”하며 웃었다. 동생과 전화를 하다가 위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누나는 딸이 없지만 너는 딸이 있어 좋겠다. 하다가. 귀염둥이 공주님은 나처럼/누나처럼 자라지 않고 지금처럼 생각없이 즐겁게 자랐으면 한다며 의견 일치를 보았다. 2. 카드게임 하고 싶다는 둘째에게 신랑이 잡혀버려서 큰 아이와 둘이서 산책을 나와 5km, 두 시간 정도 걸었다. 햇빛과 물결, 온갖 새들과 나무를 보다 고개를 돌리면 키가 많이 자라 이제는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눈이 마주친다. 내 보물 내 조그만 아기가 언제 커서 나의..

깎아.

사회 초년생부터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다. 네모지고 뾰쪽해도 그냥 언덕에서 굴러내려가며 이리저리 깎이고 깎여 동그래질거라 기대했다. 거의 20년을 굴러내려가다보니 많이 둥글어졌다. 그런데 피로파괴의 법칙을 피하지는 못 했다. 할 수 있게 된 것들이 많아졌지만 하고 싶지 않은 감정도 비례한다. 깎았는데 깎였다. 할 수 있는데 해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