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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이십대 때랑 마음은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은데- 라고 했더니 무슨 말이야. 너는 그 때 질풍노도의 시기였어. 지금은 어른 됐지. 니가 생각해도 그 때로 돌아가기 싫을걸?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요 몇 주 울렁거리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왜 이 단점은 고쳐지지 않나 고민했었는데 지금이 아주 많이 나아진 거였다. 이십대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완전 사람 된거다. 그걸 잊고 있었다.

아니 왜?

휴가를 내어 건강검진을 하고 신랑과 점심 맥주 음료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한 시간여를 걸어 동네로 돌아와 둘째를 찾아 귀가한 뒤 미용실을 갔다가 충동적으로 외출복 그대로 운동을 갔다. 복근을 부여잡고 시계를 보니 큰 애의 운동 수업 시간이기에 처음으로 올라가 보았다. 날렵하고 우아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멋있었다. 대놓고 계속 보면 애가 싫어할까 싶어 흘끔거렸다. 수업이 끝나고 밤길을 손 잡고 산책하다 물었다. 아까 엄마가 운동하는 거 쳐다봐서 싫지 않았어? “아니 왜? 세계 최고의 미녀가 보는 건데. 좋지~~”

사람은 사람으로

생각이 많았던 며칠. 생각을 이리 했다 저리 했다 고쳐봤다 되돌려봤다. “그래도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고 애정을 주면서 살아갈거야. 바뀌지 않을거야. 그냥 알아만 둬.” 라던 신랑의 조언과 “그러게 나만 좋아하라니까.” 라던 그녀의 농담으로 방황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복귀 후 처음으로 회사에 간 날. 예비군 훈련으로 px에서 사 왔다며 선물을 받았다. 다녀온 지 좀 된 걸로 아는데, 사다놓고, 사무실 잘 안 나오는 내가 오면 주려고 책상에 남겨 두었던 거구나. 그간 어지러웠던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 여러 부침과 고민은 물론 계속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그 때 행복했을거야.

한 달 동안 애들 수발들며 집안일하다보니 틈틈이 온라인 쇼핑도 자주 한다. 사야 했는데 바빠서 못 챙기던 생필품을 쟁이다보면 미끼상품에도 현혹된다. 가 보고 싶었던 속초 롯데리조트 키즈룸 특판을 잡아 평일을 끼워서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큰애가 8살 때 탔던 삼척 레일바이크를 둘째가 8살 때 다시 갔는데 둘 다 기억을 전혀 못 했다. 여러 번 묵었던 삼척 쏠비치를 초면처럼 느끼는 아이들과 밤길을 산책하며 물었다. 이렇게 다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릴 때 여행 가는 건 의미 없는 게 아니냐고.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때의 나는 행복했을거야. 어릴 때 행복해서 지금 내가 성격이 좋잖아. 이번 여행도 행복해.“ 큰 아이의 대답이 감동적이었다. 큰 위안과 보람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고 집을 챙기고 현실..

오전 5시.

오전 5시. 신랑의 기상 알람이 들린다. 출장이라 조금 더 자겠다고 신랑이 다시 눕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야지 하며 방을 나가는 큰 애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어제 하교 후 숙제 한다는 아이를 놀자고 꼬여내어 산책하고 돌아다녔다. 엄마랑 놀게 학원도 째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밤이 되니 그 날 해야 할 숙제를 다 못 끝마쳤는데 너무 졸리다고 괴로워하던 아이가, 다음 날 일찍 일어나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본인 하루 고생했으니 웹툰 연재 올라온 것 10분만 보고 자겠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게 오전 5시 일줄은 몰랐다. 마음에 걸려 똑똑 두드려보니 책상에 앉아 열심히 쓰고 있다. 혼자 할래 엄마가 옆에 누워있을까 하니 옆에 있어주는 게 응원 받는 기분이란다. 아이 방 침대에 누워- 형광등이 눈이 ..

10분의 1.

큰애 입학 때 만큼은 아니지만, 둘째의 입학도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 있다. 환경이 바뀌면 나도 모르던, 혹은 잊고 있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새삼 깨닫는 나는 참으로 계획주의자에 완벽주의자다. 사적인 영역은 대충대충 되는대로를 선호하지만, 이것이 공적인 영역이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복적으로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한다. 열 가지를 계획해서 아홉 가지를 하는데 꼭 한 가지를 놓친다. 그리고 집에 오는 내내 그 한 가지를 자책하는 습성이 있다. 사실 그 한 가지가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아이는 별 생각 없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지난 주에는 시간표를 완벽하게 주차별로 짜놓고 햇갈려서 태권도를 못 보낸 거랑, 이번 주는 자고 일어나 뒷머리가 뜬 것을 못 눌러주고 보낸 거다. 진짜 별 거 ..

주름 - 파코 로카

나이듦에 따른 몸과 뇌에 오는 노화. 요양원 생활을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만화로 표현했다. 슬픔이나 괴로움 우울함 보다는 아쉬움의 감정이 더 진하게 남은 것은 기억이 단편적으로 끊어진 필름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 부모님과 사돈어르신과 식사를 하였는데 일흔이 되신 분들이 사십대인 우리에게 그 때는 한창이다 젊다 사오십대에 운동을 해 두어야 한다 조언해 주셨다. 원래 미리 사서 고민하는 성격이지만 부모님의 노후, 나의 노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마지막 즈음이 너무 강렬하고 생생하지 않도록 많이 잠들고, 자주 끊기고, 몽환적인 세상이 되는 것은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마취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