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그 때 행복했을거야.

LEEHK 2023. 3. 24. 02:10

한 달 동안 애들 수발들며 집안일하다보니 틈틈이 온라인 쇼핑도 자주 한다. 사야 했는데 바빠서 못 챙기던 생필품을 쟁이다보면 미끼상품에도 현혹된다. 가 보고 싶었던 속초 롯데리조트 키즈룸 특판을 잡아 평일을 끼워서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큰애가 8살 때 탔던 삼척 레일바이크를 둘째가 8살 때 다시 갔는데 둘 다 기억을 전혀 못 했다. 여러 번 묵었던 삼척 쏠비치를 초면처럼 느끼는 아이들과 밤길을 산책하며 물었다. 이렇게 다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릴 때 여행 가는 건 의미 없는 게 아니냐고.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때의 나는 행복했을거야. 어릴 때 행복해서 지금 내가 성격이 좋잖아. 이번 여행도 행복해.“ 큰 아이의 대답이 감동적이었다. 큰 위안과 보람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고 집을 챙기고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바둥바둥 살아오며 십여 년을 거의 관계와 단절되어 살고 있었다. 동성의 친구들은 그래도 조금씩 만났는데, 대학 때 친구들은 이상하게 모두 연락이 끊겼다. 그들이 사회 진출할 때 쯤 나는 초보 워킹맘으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지금은 그들도 그들의 삶을 견뎌내고 있느라 여유가 없겠지. 정말 몰입했던 인연들인데, 가끔 생각하면 서운하고 허무했다.




그러다 이번 여행에서 들은 큰애의 대답이 떠올랐다. 그 때가 지금과는 괴리되어 버렸지만, 내 안에 스며들어 있으리라. 가치가 있으리라.


그래도 다시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얘들아. 서툴고 부족했었던 이십대를 함께 했던 내 친구들. 사십대 안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오십대가 되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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