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재택근무 7개월 째.

LEEHK 2020. 9. 5. 22:28

중간에 회사 정책이 전면 출근으로 바뀌면서, 

혼자만 재택을 유지하기 어려워, 출근일을 늘리며 고민하고 있던 찰나,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가 되며 전사 원격 근무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7개월째 재택근무 중이다.

 

 

아이들 방에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두고, 

오전에 온라인 수업할 때는 큰 애를 옆에 두고 있으나,

가능하면 얼른 애를 놀라고 내쫓고 혼자 일하곤 한다.

아침에 부모님께서 일찍 와주셔서 아이들 끼니 챙겨주시는 덕에, 

낮에는 그냥 방콕 열일 모드로 지낸다.

 

아이 병원 진료로 휴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점심 시간에 애 데리고 동네 소아과 다녀와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작은 애는 어쩌다 농가진이 생겼는데, 항생제 먹여 다 치료해놓으면 재발하고 또 재발해서 벌써 세 번째를 치렀다.

 

일은 해도해도 많은데, 정리해도 또 생기고 정리해도 또 생기고

내 안의 갈등도 정리해도 또 생기고 정리해도 또 생긴다.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시어머니께서

벌써 2차 수술을 하셨다. 

코로나 와중에 병문안도 쉽지 않은 상황에, 그래도 굳건히 재활하며 잘 회복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회사 일에 마음을 뺏겨 일상이 흔들리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랑하는 가족의 투병은 세상을 깜깜하게 만든다.

 

 

내 마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서 머무르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도,

그냥 우리 어머니 무사히 회복하시어 행복하시는 것만 바라게 된다.

우리 부모님들, 아이들, 가족들의 건강 이외의 것들은 우선순위가 쭉 하락한다.

 

내 개인적인 자아실현, 커리어, 미래에 대한 것들은 

어쩌면 사치에 가까운 고민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 순간에, 편치 않았던 장면들이 머리속에 플래시백 되며

까무룩 가라앉으려는 순간에도,

이 모든 것은 별 것 아니다. 되뇌어 생각하며 끄집어 올리고 있다.

 

 

 

시어머니 팔을 주물러 드릴 수 있고,

시아버지와 막걸리 한 병을 반주로 나누어 마시고,

어머니 퇴근하시기 전에 꼬옥 안고 사랑한다 말하고,

아버지 드시고 싶은 것들을 사서 챙겨드릴 수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큰 애를 안고 뽀뽀하고, 작은 애 팔다리를 마음껏 만지고,

신랑과 눈을 마주치며 웃을 수 있는데

무얼 더 바라고 욕심내며 부끄러워 하는 것인가.

 

 

 

늘상 그랬지만, 길어진 재택 내내, 결국은 계속 마음 수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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