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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오전 5시. 신랑의 기상 알람이 들린다. 출장이라 조금 더 자겠다고 신랑이 다시 눕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야지 하며 방을 나가는 큰 애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어제 하교 후 숙제 한다는 아이를 놀자고 꼬여내어 산책하고 돌아다녔다. 엄마랑 놀게 학원도 째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밤이 되니 그 날 해야 할 숙제를 다 못 끝마쳤는데 너무 졸리다고 괴로워하던 아이가, 다음 날 일찍 일어나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본인 하루 고생했으니 웹툰 연재 올라온 것 10분만 보고 자겠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게 오전 5시 일줄은 몰랐다. 마음에 걸려 똑똑 두드려보니 책상에 앉아 열심히 쓰고 있다. 혼자 할래 엄마가 옆에 누워있을까 하니 옆에 있어주는 게 응원 받는 기분이란다. 아이 방 침대에 누워- 형광등이 눈이 ..

10분의 1.

큰애 입학 때 만큼은 아니지만, 둘째의 입학도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 있다. 환경이 바뀌면 나도 모르던, 혹은 잊고 있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새삼 깨닫는 나는 참으로 계획주의자에 완벽주의자다. 사적인 영역은 대충대충 되는대로를 선호하지만, 이것이 공적인 영역이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복적으로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한다. 열 가지를 계획해서 아홉 가지를 하는데 꼭 한 가지를 놓친다. 그리고 집에 오는 내내 그 한 가지를 자책하는 습성이 있다. 사실 그 한 가지가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아이는 별 생각 없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지난 주에는 시간표를 완벽하게 주차별로 짜놓고 햇갈려서 태권도를 못 보낸 거랑, 이번 주는 자고 일어나 뒷머리가 뜬 것을 못 눌러주고 보낸 거다. 진짜 별 거 ..

개학 전.

둘째가 6년 다닌 어린이집에 편지와 정성을 담아 보내고 혼자 또 마음이 찡했다. 지난 시간이 스치고 지나간다. 기어다니던 아이를 유모차 태워 등원하던 첫 날부터 중간에 학부모 운영위원회도 하고 여러 사건도 있었으나 아이를 건강하게 함께 키워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운 좋게 둘째가 동네 돌봄센터에 당첨되고 큰 애는 영어 학원 1주년을 맞아 3단계나 월반하여 시간표가 완전 뒤집어져서 다시 짜느라 한참 걸렸다. 각 학년에 맞는 준비물 챙기고 챙기고, 빠른 성장으로 옷도 다시 챙기고 퀘스트가 줄을 잇는다. 둘째가 하교 후 혼자 학원이나 돌봄센터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입학 후 3월 적응기에 같이 있어줄 수 있어 다행이다. 학교에 가면 실수해서 혼날 게 걱정된다는 아이에게 엄마가 3월 내내 같이 데리고 가고 데리러 ..

한 달 휴가

세어보니, 2018년에 두 달 안식휴가였고 2021년에 연중에 못 쓴 휴가를 모아 한 달 쉬었고 2023년에도 작년 휴가 남은 거 모아서 한 달 쉰다. 이 때 쓰려고 고이 모셔둔 안식휴가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이 때 쓰려고 남겨둔 육아휴직도 네 달 남아 있는데 올해 말이면 다시 안식휴가가 한 달 나온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가진 휴가가 너무 많아서 그런데 두 달 쉬어도 되냐 물으니 한 달까지는 어떻게 버텨보겠지만 두 달은 안되겠다고 거절당했다. ㅎ 이제 다들 자리 잡고 일 잘 해서, 나 없이도 꽤 잘 굴러갈 것 같지만, 그래도 있어주길 원하니 있어줘야겠다 싶었다. 남은 휴가/휴직을 다 못 쓰고 날릴 가능성도 있겠다 생각했다. 공백 전에 이리저리 일을 정리하다보니 숨가쁘게 바쁘다. 휴가 들어가기 전에 식..

바쁘게 안정.

근래 제일 추운 날, 혹한을 뚫고 아침에는 추천 받은 프로그램으로 집 근처 센터에 다녀오고 점심에는 최근 거의 올출하고 있는 필라테스를 다녀와서 오후에는 오랜만에 운전해 그녀들을 만나고 왔다. 저녁 설겆이 후에, 가스레인지와 주방후드도 청소했다. 고생했다 이제 좀 쉬어라 하는 생각이 들지 않냐 하는데, 정말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 쉬나. 바쁘고 성실하게 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된다.

눈오는 날 아침.

병원 정기검진으로 집을 나서는데 아이가 후다닥 따라온다. 엄마랑 같이 가겠다고 평소보다 20분이나 일찍 길을 나서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아이가 말한다. “엄마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빨리 나온거야.” 눈이 제법 내리고 길에도 많이 쌓였다. 모자 쓰고 뛰어갈거라며 우산을 안 챙긴 아이에게 “엄마가 학교까지 우산 씌워줄까? 혹시 엄마랑 같이 가면 부끄럽나?” 하고 물었더니, 되려 엄마 병원 시간 괜찮냐 물으며 우산 안으로 들어온다. 싸락눈이 머리 위 우산에 부딪치며 토도도독 소리가 난다. 신호를 기다리며 아이가 머리를 슬쩍 기대며 웃는다. 안고 싶은데, 보는 눈이 많으니 여기까지만 한다는 의미다. 미끄러질까 하얀 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손이 움찔거린다. 눈을 만지고 싶은 아기와 귀찮은 게 싫은 어린이..

오랜만

사회 초년생 시절에 가장 깊이 와닿았던 ‘사람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큰 안정감을 얻는다,’ 는 구절을 요즘 오랜만에 다시 느끼고 있다. 공부도 운동도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이 많이 자라 손이 덜 가게 된 덕이다. 웬만하면 주 5일 운동을 하는데, 오랜만에 쓰는 근육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반갑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장거리 산책을 한다.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은 책 보고, 나는 공부한다. 스터디 일정에 맞춰 달리느라 늦은 밤에 책을 보고 있으니 큰애가 책갈피에 엄마 힘내라고 응원 문구를 써준다. 성실한 것, 일정을 맞추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발전한다는 느낌에 안정감을 받는다.

처음은 힘들다.

아빠에게는 절대 김밥만을 요구하던 아이가, 아빠 출장으로 엄마가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김밥을 포기했다. 정말 잘 만들어주고 싶어서 몇 주 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고 전날에 재료 다듬고 초벌 구이 하고 예약취사 걸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만들고 7시에 아이들 깨워 등원 등교 시키고 체력이 고갈됐다. 두통에 어지러워서 잠시 눈을 붙이느라 오프도 냈다. 3년 만의 현장학습 준비을 잘 해주고 싶었다. 김밥은 못 싸줘도 도시락을 부족함 없이 챙겨주고 싶었다. 긴장하고 집중해서 어깨가 아팠다. 지나고 나니 뭘 그렇게까지 곤두서 있었나 싶다. 다시 하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 지난 주말 사건도, 그 후의 여파 역시 비슷한 종류를 겪어본 적 있기에 침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