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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개.

초과근무가 쌓이니, 말일은 오프하고 싶어졌다. 일을 해도 되지만, 오프를 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화상 회의에 우연히 모인 멤버들에 애정이 있었고 2-3년 정도 같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생각나 내일 낮에 근무 째고 낮술 어때? 하고 제안했다. 11시에 만나서, 19시에 헤어졌다. 해산물과 감튀에 맥주도 마시고 쿠키에 커피도 마셨다. 코로나 이후에 입사한 신입이도 있었고 장기간 협업하며 티키타카가 잘 맞는 동료도 있었다. 그 긴 시간 할 말, 들을 말이 참 많았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귀가하는 길은 시원해서 좋았다. 낮에 보지 않았던 업무 상황들을 응대하고 정리하며 10월의 회의 일정을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몇 친구는 업무시간 초과로 오프한 게 아니라, 벙개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쓴 거였더..

여름휴가 - 쏠비치양양

운 좋게 휴양지 당첨이 4박이나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쏠비치양양 실버 빨라시오. 작년에 묵었던 방과 같은 라인인데 층수만 달랐다. 바다수영 후 바로 씻으러 갈 수 있는 구조라 4일간 매일 편하게 물놀이를 했다. 수영복과 구명조끼를 말릴 수 있는 테라스도 좋다. 설악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도 올랐다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낙산사도 걸었다. 아이가 한산을 또 보고 싶어해 할아버지와 둘이 선셋 시네마도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손주의 보호자가 되어주십사 보냈는데 손주는 할아버지의 보호자인양 이리저리 챙기더니 여행 내내 둘이 좋은 친구처럼 붙어 다녔다. 딸이자 엄마로서 그 장면들이 참으로 뿌듯했다. 짐이 많아 망설이다가 노트북을 들고 갔는데 다행히 장애 대응할 일 없었고, 회사 연락도 많지 않았..

놀금과 소비재

이래저래 논란 속에 도입된 놀금. 첫 달은 두 번 다 일을 했다. 평일에 휴가를 내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 그 달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주말근무 했을 상황을 놀금 근무로 막았으니 다행이랄까. 놀금에 혼자 일을 하니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고 회의도 없어 집중이 잘 되고 진도도 쭉 쭉 빠져서 정말 좋았다. 토요일에 혼자 출근하며 느끼던 차분함이 겹치며 놀금 근무에 거부감은 없었으나,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8월 첫 놀금은 쉬었다. 아이의 방학이다. 자율을 주면 방치하는 것 같고, 관리를 해주자니 가혹한 것 같고, 재택근무라 해도 얼굴도 제대로 못 보니 늘 미안한 부채 의식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신랑과 직장 동료들에게 추천 받은 남돌비, 영화 한산, 명당이라는 H열에서 거북선의 해상 전..

유품

재택근무를 위해 옷방을 치우고 근무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모니터 받침대 위, 큰애와 작은애가 만들어 선물한 물건과 편지 옆에 보라색 리본이 달린 작은 종이 상자가 있다. 언젠가, 일산에 갔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안방으로 부르셔서는 손에 쥐어주셨다. 그 즈음에 무엇인가를 선물해 드렸었다. 니가 해 준 것들이 고마워서 너만 특별히 주는 거라고, 종로에 다니시다가 생각이 나서 사셨다고 주셨다. 작은 큐빅 이십여개가 꽃 모양으로 세공되어 있는 로즈골드 링 귀걸이었다. 당시 어린 아들과 내 귀의 안전을 위해 귀걸이는 못 하고 있던 시기라 곱게 넣어두었다가, 어머니 돌아가신 뒤 서랍 정리를 하다가 다시 찾았다. 애들이 커서 내 귀를 잡아당기지 않기 때문에 귀걸이를 해도 되지만, 이제는 혹시나 귀걸이가 망가질까봐 잠..

플레이샵

코로나로 2020년 초반 재택에 들어간 뒤로 회식 워크샵 없이, 점심도 같이 안 먹던 시간들을 지나, 2년 반 만에 플레이샵을 빌미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정성으로 준비해 준 레크레이션 퀴즈프로그램도 즐기고 볼링도 치고, 원데이 클래스 꽃 체험을 하고 소수인 여자 동료들에게는 사비로 미니 꽃다발 선물도 했다 오랜만에 차 없이 판교역까지 가다보니 굽이굽이 온 동네를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당황도 했지만 화상으로만 만나던 친구들과 오프라인으로 첫 만남도 가지고 가깝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다보니 늘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앞으로도 계속 재택 근무를 하고 회사는 잘 나가지 않을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종종 회식도 하고 워크샵도 할 수 있겠다. 정말 이제 사회적인 일상..

오히려 좋아.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 이득을 더 얻기 위해 혹은 충동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보다 못 견디겠는 것이 아니라면 지속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이러한 생각들은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봤을 때 많은 것들을 이뤘기 때문인지도. 결과론적으로 나는 지금 괜찮으니. 머무르고 지속했던 선택들을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순간 순간 최악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놓지 않고 버티다보면, ‘오히려 좋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 크고 작은 돌부리들에 멈칫하고 넘어졌기 때문에 태풍을 피하고, 지름길과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더 잘하려, 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작은 즐거움과 보람에 집중해서 기쁨을 찾는다 예상대로..

2년 치 여행 소진.

여행 첫 날 큰 애의 발 부상으로 응급실 다녀오고, 물도 닿으면 안 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와 이후 모든 일정 스톱하고 숙소에서 머물렀다. 아침 늦도록 누워 뒹굴거리다 바삭거리는 침구와 하늘,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던 스플리트의 옥탑방을 떠올렸다. 비 일상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일상적인 휴식을 취하는 지극히 현지인스러운 시간. 바닷가 마을에 가서 해산물도 바다도 챙기지 못 했지만 그저 함께라 좋았고, 바쁘지 않아 좋았다. 팔뚝의 흑염룡이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발 부상자를 모시고 귀환 직전 뒷좌석에 둘째가 게워 올린 것들을 수습하러 갓길에 정차해 생수로 아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히며 상황 파악 못 하는 흑염룡에게 소리도 여러 번 질렀지만 그래도 더 큰 사고 안 나고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