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재를 찍다 199

처음은 힘들다.

아빠에게는 절대 김밥만을 요구하던 아이가, 아빠 출장으로 엄마가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김밥을 포기했다. 정말 잘 만들어주고 싶어서 몇 주 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고 전날에 재료 다듬고 초벌 구이 하고 예약취사 걸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만들고 7시에 아이들 깨워 등원 등교 시키고 체력이 고갈됐다. 두통에 어지러워서 잠시 눈을 붙이느라 오프도 냈다. 3년 만의 현장학습 준비을 잘 해주고 싶었다. 김밥은 못 싸줘도 도시락을 부족함 없이 챙겨주고 싶었다. 긴장하고 집중해서 어깨가 아팠다. 지나고 나니 뭘 그렇게까지 곤두서 있었나 싶다. 다시 하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 지난 주말 사건도, 그 후의 여파 역시 비슷한 종류를 겪어본 적 있기에 침착했다. ..

벙개.

초과근무가 쌓이니, 말일은 오프하고 싶어졌다. 일을 해도 되지만, 오프를 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화상 회의에 우연히 모인 멤버들에 애정이 있었고 2-3년 정도 같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생각나 내일 낮에 근무 째고 낮술 어때? 하고 제안했다. 11시에 만나서, 19시에 헤어졌다. 해산물과 감튀에 맥주도 마시고 쿠키에 커피도 마셨다. 코로나 이후에 입사한 신입이도 있었고 장기간 협업하며 티키타카가 잘 맞는 동료도 있었다. 그 긴 시간 할 말, 들을 말이 참 많았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귀가하는 길은 시원해서 좋았다. 낮에 보지 않았던 업무 상황들을 응대하고 정리하며 10월의 회의 일정을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몇 친구는 업무시간 초과로 오프한 게 아니라, 벙개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쓴 거였더..

여름휴가 - 쏠비치양양

운 좋게 휴양지 당첨이 4박이나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쏠비치양양 실버 빨라시오. 작년에 묵었던 방과 같은 라인인데 층수만 달랐다. 바다수영 후 바로 씻으러 갈 수 있는 구조라 4일간 매일 편하게 물놀이를 했다. 수영복과 구명조끼를 말릴 수 있는 테라스도 좋다. 설악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도 올랐다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낙산사도 걸었다. 아이가 한산을 또 보고 싶어해 할아버지와 둘이 선셋 시네마도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손주의 보호자가 되어주십사 보냈는데 손주는 할아버지의 보호자인양 이리저리 챙기더니 여행 내내 둘이 좋은 친구처럼 붙어 다녔다. 딸이자 엄마로서 그 장면들이 참으로 뿌듯했다. 짐이 많아 망설이다가 노트북을 들고 갔는데 다행히 장애 대응할 일 없었고, 회사 연락도 많지 않았..

놀금과 소비재

이래저래 논란 속에 도입된 놀금. 첫 달은 두 번 다 일을 했다. 평일에 휴가를 내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 그 달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주말근무 했을 상황을 놀금 근무로 막았으니 다행이랄까. 놀금에 혼자 일을 하니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고 회의도 없어 집중이 잘 되고 진도도 쭉 쭉 빠져서 정말 좋았다. 토요일에 혼자 출근하며 느끼던 차분함이 겹치며 놀금 근무에 거부감은 없었으나,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8월 첫 놀금은 쉬었다. 아이의 방학이다. 자율을 주면 방치하는 것 같고, 관리를 해주자니 가혹한 것 같고, 재택근무라 해도 얼굴도 제대로 못 보니 늘 미안한 부채 의식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신랑과 직장 동료들에게 추천 받은 남돌비, 영화 한산, 명당이라는 H열에서 거북선의 해상 전..

유품

재택근무를 위해 옷방을 치우고 근무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모니터 받침대 위, 큰애와 작은애가 만들어 선물한 물건과 편지 옆에 보라색 리본이 달린 작은 종이 상자가 있다. 언젠가, 일산에 갔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안방으로 부르셔서는 손에 쥐어주셨다. 그 즈음에 무엇인가를 선물해 드렸었다. 니가 해 준 것들이 고마워서 너만 특별히 주는 거라고, 종로에 다니시다가 생각이 나서 사셨다고 주셨다. 작은 큐빅 이십여개가 꽃 모양으로 세공되어 있는 로즈골드 링 귀걸이었다. 당시 어린 아들과 내 귀의 안전을 위해 귀걸이는 못 하고 있던 시기라 곱게 넣어두었다가, 어머니 돌아가신 뒤 서랍 정리를 하다가 다시 찾았다. 애들이 커서 내 귀를 잡아당기지 않기 때문에 귀걸이를 해도 되지만, 이제는 혹시나 귀걸이가 망가질까봐 잠..

플레이샵

코로나로 2020년 초반 재택에 들어간 뒤로 회식 워크샵 없이, 점심도 같이 안 먹던 시간들을 지나, 2년 반 만에 플레이샵을 빌미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정성으로 준비해 준 레크레이션 퀴즈프로그램도 즐기고 볼링도 치고, 원데이 클래스 꽃 체험을 하고 소수인 여자 동료들에게는 사비로 미니 꽃다발 선물도 했다 오랜만에 차 없이 판교역까지 가다보니 굽이굽이 온 동네를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당황도 했지만 화상으로만 만나던 친구들과 오프라인으로 첫 만남도 가지고 가깝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다보니 늘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앞으로도 계속 재택 근무를 하고 회사는 잘 나가지 않을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종종 회식도 하고 워크샵도 할 수 있겠다. 정말 이제 사회적인 일상..

2년 치 여행 소진.

여행 첫 날 큰 애의 발 부상으로 응급실 다녀오고, 물도 닿으면 안 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와 이후 모든 일정 스톱하고 숙소에서 머물렀다. 아침 늦도록 누워 뒹굴거리다 바삭거리는 침구와 하늘,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던 스플리트의 옥탑방을 떠올렸다. 비 일상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일상적인 휴식을 취하는 지극히 현지인스러운 시간. 바닷가 마을에 가서 해산물도 바다도 챙기지 못 했지만 그저 함께라 좋았고, 바쁘지 않아 좋았다. 팔뚝의 흑염룡이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발 부상자를 모시고 귀환 직전 뒷좌석에 둘째가 게워 올린 것들을 수습하러 갓길에 정차해 생수로 아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히며 상황 파악 못 하는 흑염룡에게 소리도 여러 번 질렀지만 그래도 더 큰 사고 안 나고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적은 내 안에.

막상 꼽아보면 주변은 선의로 가득하다. 호의와 애정의 감정적인 보상에 물리적인 기쁨도 적지 않다. 1. 아이가 오랜만에 사흘째 40도를 찍어 애닯게 미온수에 가재수건 적셔 닦아가며 챙기다 아이 상태가 호전된 뒤 바로 쓰러졌다. 오한에 고열에 두통에 시달리며 누워 있는데 아이가 주섬주섬 물그릇과 천을 가지고 온다. 엄마도 기화열로 편해졌으면 좋겠다며 똑같이 닦아준다. 내 보물. 이제 성인 남성 95 사이즈가 낙낙하니 맞는다. 2. 식사 편히 해결하라고 보내주신 모바일 상품권 금액이 커서... 과분하다 메세지 하니 “ 입도 많으니까 ㅋㅋ 밥 잘 챙겨드시고 얼른 나으세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 집에 입이 많긴 했다;;; 3. 온 가족이 시간차 확진으로 앓았는데, 정신력으로 버텨낸 신랑이 의지가 되고 ..

코로나 백신 부작용 과 백신 패스.

코로나 백신 1차 화이자 접종 후 고열과 쇄골 위 멍울이 2-3센티 크기로 잡혔었다. 팔이 안 올라가고 많이 부었다. 3일 정도 휴가를 내고도 제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한 달 정도 걸렸다. 쇄골 위 멍울 부위 임파선 붓는 형상이 암표지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올해 건강검진에서 큰 이상 없었고, 열심히 검색해보니 흔한 코로나 백신 부작용이라고 나와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참았다. 코로나 백신 2차 화이자 접종 때도 부작용이 있었다. 고열과 쇄골 위 멍울, 팔이 붓고 1차 때보다 조금 더 심해진 증상을 겪었다. 5일 휴가내고(중간 중간 급건은 처리하러 근무를 조금씩 하긴 했다. ㅜㅜ) 병원에 가서 항생제 처방 받고 일주일 먹으니 멍울은 작아졌다. 다리와 하반신이 무척 저린 증상이 꽤 오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