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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사회 초년생 시절에 가장 깊이 와닿았던 ‘사람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큰 안정감을 얻는다,’ 는 구절을 요즘 오랜만에 다시 느끼고 있다. 공부도 운동도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이 많이 자라 손이 덜 가게 된 덕이다. 웬만하면 주 5일 운동을 하는데, 오랜만에 쓰는 근육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반갑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장거리 산책을 한다.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은 책 보고, 나는 공부한다. 스터디 일정에 맞춰 달리느라 늦은 밤에 책을 보고 있으니 큰애가 책갈피에 엄마 힘내라고 응원 문구를 써준다. 성실한 것, 일정을 맞추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발전한다는 느낌에 안정감을 받는다.

처음은 힘들다.

아빠에게는 절대 김밥만을 요구하던 아이가, 아빠 출장으로 엄마가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김밥을 포기했다. 정말 잘 만들어주고 싶어서 몇 주 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고 전날에 재료 다듬고 초벌 구이 하고 예약취사 걸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만들고 7시에 아이들 깨워 등원 등교 시키고 체력이 고갈됐다. 두통에 어지러워서 잠시 눈을 붙이느라 오프도 냈다. 3년 만의 현장학습 준비을 잘 해주고 싶었다. 김밥은 못 싸줘도 도시락을 부족함 없이 챙겨주고 싶었다. 긴장하고 집중해서 어깨가 아팠다. 지나고 나니 뭘 그렇게까지 곤두서 있었나 싶다. 다시 하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 지난 주말 사건도, 그 후의 여파 역시 비슷한 종류를 겪어본 적 있기에 침착했다. ..

벙개.

초과근무가 쌓이니, 말일은 오프하고 싶어졌다. 일을 해도 되지만, 오프를 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화상 회의에 우연히 모인 멤버들에 애정이 있었고 2-3년 정도 같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생각나 내일 낮에 근무 째고 낮술 어때? 하고 제안했다. 11시에 만나서, 19시에 헤어졌다. 해산물과 감튀에 맥주도 마시고 쿠키에 커피도 마셨다. 코로나 이후에 입사한 신입이도 있었고 장기간 협업하며 티키타카가 잘 맞는 동료도 있었다. 그 긴 시간 할 말, 들을 말이 참 많았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귀가하는 길은 시원해서 좋았다. 낮에 보지 않았던 업무 상황들을 응대하고 정리하며 10월의 회의 일정을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몇 친구는 업무시간 초과로 오프한 게 아니라, 벙개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쓴 거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