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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정이품송 (충북 보은군)

LEEHK 2007. 4. 22. 00:50

0.

 

 천 일. 회사에 꽃바구니와 케이크가 배달되어 왔다.

 생글님네 전화번호를 미리 알려주어야 했는데, 전혀 생각도 못하던 터라 다른 업체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유감이지만. 뭐, 당황스럽고, 기뻤다. ^^ 케이크도 다 함께 나누어 먹었음. 꽃바구니는 월요일날 회사에 가서 하루 즐긴 뒤, 팀원 분들께 나눠 담아 드릴 예정이다. ^^ (예님이 그랬던 것처럼!!)

 

 

 

 천 일 기념으로 속리산 법주사를 다녀왔다. 불교는 아니지만 사찰을 참 좋아한다.

 장소며, 맛집이며, 일정이며 모두 준비하며 애인도 일주일 동안 많이 설레었다고 했다. 그 정성이 기쁘고 고마웠다..

 

※ 법주사 :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승려 의신이 처음 지은 절.

 

 

1.

 

 충북 보은은 서울에서 매우 먼 데다가, 중부 고속도로 IC에서 차를 타고 구불구불 길을 꽤 가야 한다.

 연두빛 새 잎이 돋아나는 가운데 하얀색 분홍색 꽃들이 어우러진 봄의 산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드라이브 코스로 최고!

 

 

 

 

 

 

 

 

 

 

2.

 

 법주사 가는 길에 정이품송을 보았다. 8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는 "오래 살았구나" 가 아닌 "오래 사셨구나" 로 표현하게 되더라. 2002년 2004년 폭설에 가지가 부러지고, 2007년 3월-불과 한 달 전에 강풍으로 또 가지가 부러져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근처에 만개한 벚꽃, 진달래와 어우러져 한 쪽 가지만 지지대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그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안타깝고 멋있고 슬프고 안타까웠다.

 

 

  

※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 1464년에 신병에 고통받던 세조가 온양온천과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이 나무 아래 이르러 타고가던 연(輦)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연 걸린다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서울로 돌아갈 때는 마침 쏟아지는 쏘나기를 이 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어 신기하고  기특하여 나무에 대하여 전무후무하게도 벼슬을 내린 전설이 깃든 나무이다. (http://visitkorea.or.kr/ya/gg/yagg_mv0.jsp?i_seqno=1853)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로 가는 길,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여 바람 불때마다 꽃잎이 흩날린다.

 

 

 

 

 

3.

 

 법주사 입구 소형주차장에서 하루 주차료 4,000원을 지불한 뒤, 평지를 20분 가량 걸었다.

 안내서에는 10분이면 도착한다고 되어 있으나, 자연 산책로에서 오랫만에 흙을 밟으면서 걸으니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계곡물도 굉장히 맑아 가슴까지 시원했다.

 

 

 

 

 법주사 입장료는 어른 1인당 3,000원이었다. 돈을 내기 싫어하는 관광객들이 있는지, 매표소 앞에 다른 문화관광지 입장료 비교가격을 제시해 놓았더라. (ex. 불국사, 석굴암 입장료 : 4,000원, 에버랜드 입장료 7,000원) 어디든 가격비교가 대세인가 보다.

 

 

 

 

 벚꽃이 만발한 법주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さくら땜시롱 이미지가 별로 안 좋긴 하지만, 일본이 국화로 정했을 뿐, 우리나라 벚꽃은 정말 아름답다.

 

 

 

 

 

 

4.

 

 설명대로 허리가 많이 잘록하신 이 부처님께 처음으로 절했다. 종교는 없지만, 부처님께 절하면서 마음 속으로 기원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신에게 나를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한 방편으로서는 최고인 것 같다. 정말 마음이 평온해진다.

 

※ 법주사 마애여래의상(보물 제 216호) :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암벽에 새긴 부처님)로 미륵불상.

 

 

 

 

 

5.

 

 

 

 지하에 금동미륵대불 관련된 역사 전시관이 있다. "참배객만 들어오세요, 학생 단체 출입금지" 경고판이 인상적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인데, 부처님을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슬리퍼를 발견하지 못하고 맨발로 내려가버렸다. 바닥은 대리석이라 추웠다.

 이번 증축에 희사한 시주들 이름이 청동판에 세겨져 있는데, 공간 사정상 "10만 원" 이상 희사한 시주들 이름만 지역구별로 적어놓았더라. 그 이하의 시주들은 카드에 적어 영구보존한다고 되어있더라.

 

 부처님 앞에 가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스스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고는 하는데, 10만 원 이상 시주한 사람들만 이름 적혀놓았다는 문장을 본 이후로, 조금 불편해졌다. 그리고 절 하는 곳은 햇빛 때문인지 차양막을 세워놓았는데, 그 차양막 때문에 부처님 발만 보고 절했다.

 절을 하고 난 뒤 부처님 얼굴을 보는 게 좋은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 통일호국 금동미륵대불(높이 33m, 무게 160톤으로 황금 80Kg) : (1) 신라 혜공왕 12년(서기776년)에 금동미륵대불을 모셨는데, 고종 9년(서기1892년) 대원군이 경복궁 축조를 위한 당백전 제작을 위해 불상을 몰수해갔다. (2) 일체치하(1939)년 시멘트 부처님 조성 중 6.25 사건으로 중단. (3) 1964년 박정희 대통령과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시멘트 부처님 부활-국사교과서에서 본 사진인 듯 (4) 1986년, 흉물스러워진 시멘트 부처님 철거하고 청동 부처님으로 세움. (5) 2002년 호국불교 정신을 계승해서 통일, 세계평화, 월드컵 성공계최 등을 기념해서 새로 금동불상으로 세워서 현재에 이르렀다.

 

 

 

 

 

6.

 

 

 대웅보전(신라 진흥황 15년;서기 553년 창건 보물 915호) 안에는 부처님이 세 분 계시는데, 앉은 키가 5.5m, 허리둘레 3.9m인 국내 소조불 불상으로는 제일 크다.  다른 법당에는 향화객들이 별로 없었는데, 대웅보전 안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나는 절하고, 애인은 불화를 구경했다.

 아무 생각 없이, 제일 왼 쪽 부처님께는 나에 대해서 기원하고, 가운데 부처님께는 애인과 애인의 가족에 대해 기원하고, 오른 쪽 부처님께는 우리 가족에 대해 기원했는데, 나와서 설명 글을 보니 왼쪽은 아미타불(덕), 가운데는 비로자나불(마음), 오른쪽은 석가모니불(육신) 이셨다. 덕에 나를 기원하고, 마음에 애인과 애인의 가족을 기원하였고, 육신에 우리 가족을 기원한 셈이어서, 웃겼다. 

 

 

 

 

7.

 

 

 종교가 불교가 아니고, 정기적으로 다닐 생각도 없으면서, 관광하러 사찰에 가면 절을 하고 기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에는 눈치가 가장 중요하다. 절은 제사지낼 때랑 새배드릴 때 밖에 안 하는 내가 불교식 절하는 법을 배우는 방법은, 참배객이 올 때까지 기다린 후, 그 참배객이 어떻게 절을 올리나 유심히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운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참배하러 들어갈 때는 앞의 문이 아닌 옆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옆 문이 잠겨있길래 자물쇠를 혼자 알아서 따고 들어가서 절하고 나온 적도 있다.)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옆 문으로 들어가서 절 하고 옆문으로 조심스럽게 나오더라. 부처님 앞에서의 예의일까? 그래서 이 원통보전의 부처님께 절을 드릴 때도 조심스럽게 옆 문으로 들어가 옆 문으로 나왔다.

 

 

 ※ 원통보전 : 보물 916호 . 신라 진흥황 15년(서기553)년 창건하였으며, 높이 2.8m의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예전 건축물들은 모두 다 예술품이다. 그림도, 저 잘 끼워맞쳐진 기둥과 지붕의 수많은 나무조각들.

낡은 현판이 멋스러움을 더한다.

 

 

 

8.

 

※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 : 통일신라시대.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

 

 

 

 천 삼백년 전에 만들어진 이 석등은 사자 두 마리가 마주보고 기합받고 있어서 웃기다. ^^

 실제로 사자란 동물이 우리나라에 없었는데, 이 사자 석등이 신라시대에 있었다는 건, 마치 기린 처럼 사자도 상상 속의 동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실물 사자와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한 건 어째서일까?

 

 

저 사자의 허리라인과 엉덩이는 너무너무 섹시하다.

 

 

 

 

 

9.

 

 

 

 

 

 

 

 

 법주사 팔상전에는 부처님이 4면에 네 분 계시다. 아무 생각없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구경하고 그 방향 그대로 절을 하고 이동하는데, 안에 앉아계신 보살님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봐야 한다고 하시며 팔상도를 설명해주셨다. 부처님의 일생을 담은 8장의 그림과 네 분의 부처님,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부처님의 108제자이며, 그 제자 중 색이 다른 16명은 부처님의 애 제자들을 약 10여 분에 걸쳐 설명해주셨다. 설명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인사하자, 기회가 되면 등 하나 씩 달고 가라고, 만 원 씩이라는 발언으로 대답하셔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덕분에 그 건물 내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재미있었다.

 

 잠깐 시주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절 중축으로 이어지고, 내 안녕과 평화를 비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역시 그만두었다. 2년 쯤 전에 삼성카드 프로젝트 하던 때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십일조를 왜 교회에만 내야 하느냐, 그것을 교회에 내지 않고 불우이웃돕기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효성씨가 "물론 그래도 되요" 라고 대답해주었던 적이 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절에 시주해서 내 덕을 쌓고, 중생을 구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돈을 절에 주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직접 쓰고 싶다. 실제로 지금 하나 실행하고 있으며, 또 점점 늘려나갈 계획이다.

 부처님은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나는 향화객의 입장으로 사찰에 가서 절을 드리지만, 희사금은 내지 않는다. 그 희사금 만큼 타인을 도울게요. 라고 절 드리면서 항상 생각한다.

 

 

 ※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 :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있음.

 

 

 

 

10.

 

 법주사 철확. 신라 성덕왕(720~736제위) 때 조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당시 3,000 승도가 운집해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솥이다.

 

 ... 여기다 국을 끓여 드시면-_- 음....... 들기도 힘들고 음식 뜨기도 힘들고 불 피우기도 힘들었겠다;;

 

 

 

 

11.

 

 당간지주. 절이 사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절에 찰(당간)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고, 저 당간에는 각기 종파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있었다는 사실은 이 날 법주사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당간이란 솟대같은 신성한 구역을 상징하는 건데, 이 것 역시 대원군의 당백전 주조 때문에 징발되었다고 복원되었다고 한다.

 

 제정이 어려울 때, 사용 그낭한 철, 나무 등을 가져다 쓰는 것은 물론 어쩔 수 없었겠지만, 문화재만큼은, 과거의 흔적을 후대에 남겨주는 것 만큼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대원군도 명성황후도 고종도 다들 힘겨운 시대에 자기 위치에 충실하셨다고 생각하고 모두 존경하고 있지만 말이다.

 

 

 

 

 

 

 

 

12.

 

 보이는 부처님마다 모두 절 드리고, 불화를 모신 법당에는 합장만 하고, 뜨거운 햇빛 아래 구경을 한창 하고 나니까 지치고 힘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즐거운데, 저건 뭐지? 저것도 문화재인가? 하고 다가가보니 역시 국보 64호라고 써 있는 비석이 있었다.

 법주사는 정말, 문화재 덩어리고, 볼 것 많은 사찰이었다. 그리고 문득, 교통편이 다소 불편해서 국내 관광객들도 잘 오기 힘들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단체버스가 아니면 오기 힘들겠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면, 관광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텐데 지원 정책이 더 필요한 듯 했다.

 다만 신중한 지원 정책이었으면 좋겠다. 법주사의 그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유지되는 선에서 관광단지 개발이 더 이루어지면 어떨까?

 

 

 ※ 석연지(국보 64호) :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물을 담아두며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 크게 갈라진 연지의 몸돌을 쇠붙이로 겨우 이어놓아 안타까움을 주고 있으며,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13.

 

 법주사 들어올 때부터 눈길을 끌던 커다란 벚나무 두 그루와 맑고 깨끗한 감로수.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바가지에 들어오면 잎을 불어가며 체하지 않게 천천히 드시라던 일화가 떠올라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저 담겨있는 맑은 물을 바가지로 떠 먹는데, 어느 등산객 남자분이 저 안에 직접 입을 대고 마시며 장난을 치길래 나도 모르게 확 째려보고 말았다.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다 눈이 마주쳐버려서 그 분도 뻘쭘하고, 나도 뻘쭘했다. -_- 그러게 왜 그러셨삼.. ㅜ_ㅜ 이놈의 성질머리는 죽질 않으니 -_-

 

 

 

 

 

 

 

 

14.

 

 법주사 경내면 3시간을 돌아다녔다. 법당 하나하나 들어가 절하고 기원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불화를 구경하고 건축 양식을 살펴보고 하니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4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햇살이 매우 뜨거워서 살짝 더웠다. 바람이라도 시원했기에 망정이지, 여름에 왔으면 정말 일사병 걸렸을 거다.

 절반 정도 구경했을 때 부터 전날 마신 술도 덜 깨고, 햇살도 너무 뜨겁고 어지러워서 카메라를 내던지자 그 뒤부터는 애인이 날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래는,  떠나기 전에 아쉬워서 몇 장 더 찍은 사진. 꽃이 피는 봄에 와서 참 다행이다.

 

 

 

 

 

 

 

 

 

15.

 

법주사를 나와 다시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황토 길.

 

벚꽃 아래 황토 동그란 돌맹이들이 가득한 저 황토 길을 맨발로 걸으면 되겠다! 라고 매우 기대했으나 발이 아파서 포기 ㅠ_ㅠ 이 코스 참 길더라. 시간 많으면 걷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_- 발이 아파서 연속적으로 걸을 수는 없고; 쉬다 걷다 쉬다 걷다 해도 좋겠더라.

 

 

 

 

 

 

 

... 나와서 애인이 알아둔 한정식집에 들어가서 맛있는 밥을 먹었는데 관련 포스팅은 나중에;; 와-_- 요 포스팅 하는데 2시간 걸렸삼. 좋은 검색결과를 만들고 싶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 레퍼러는 타 포탈이 더 많은겨!! -_- 진짜 CP인겨?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