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입는 청바지 짧게 잘라서 핫펜츠를 만든 다음에 (핫펜츠를 새로 구입할 생각따위 하지 않았음-_-) 집에 있는 나시랑 입고 수영해야지 라던 나의 막연한 생각은, 회사에서 여성동지들의 핫이슈인 '비키니 입을거야?' 라는 분위기에..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받은 스트레스 -_-; '내가 왜 괌엘 간다고 한거야. 그냥 네팔갈걸 ㅠ_ㅠ 최근 살도 무럭무럭 찌고 있어서 배도 산더미가 되어가고 있는데 으흑, 몸매관리따위 할 것 같아 내가??' 뭐 이런 생각을 주욱 하다가, 예님의 "포피스 사면 돼, 안은 비키니인데 위에 나시랑 랩스커트까지 세트야" 라는 조언에 용기를 얻어 수영복을 사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수영복을 입은 것은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으로, 까만색 원피스 수영복에 까만색 수영모자였다. 그 뒤로 바다를 가도 생각없이 갔기 때문에 대충 입고 있던 티셔츠에 입고 있던 반바지에 좋다고 헤엄치다 나오곤 했다. 무심결에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물에 들어가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당황했던 일도 있으니 말 다했지 뭐 -_-;
심적 방황에 방황을 하다가 결국 오늘 수영복을 사러 갔다. 괌 갈 때까지 식사 조절을 한다고 해도 겨우 5일인데 뭐가 되겠어. 있는대로 입을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겨울에 무슨 수영복 매장이 그렇게 붐비는지, 한참을 기다렸다 입어볼 수 있었다. 원래는 파란색에 흰색이 섞인 커다란 꽃무늬 수영복을 입어보려고 했는데 이월상품이라 사이즈가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으나, 애인이 '화투장 같아.' 라고 표현하던 붉은색 수영복을 입어 보았다. 사실 '화투장 같아' 라는 말도 마음에 들었다. 개그 소재로 수영복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 위 사진은 마네킹 컷으로 내 몸매와 전혀 상관없다 -_-; 쇼핑하우에서 'ELLE 수영복' 검색하고 가격조건 맞춰봤더니 바로 보이더라. 비키니상하의와 홀더넥 나시까지 135천원(인데 난 아울렛에서 산 거라 20% 할인받았다) + 랩스커트 35천원+ 물안경 10천원. 해서 15만원이나 들었다. -0- 예상 구매액이 8만 원이었는데 너무 비싸다 ㅠ_- 파란색을 사고 싶었었는데, 점원이 피부가 하얀 사람은 원색이 어울리니까 그냥 이거 입으라고 하더라. 그 말에 또 넘어갔다;; 사실 부끄러워서 또 갈아입고 패션쇼 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부는 비키니인데;; 이쁘긴 하다만 그것만 입고는 못 돌아다닐 것 같고. 입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탈의실에 몰래 애인을 불러 물어보니 "살쪘다 살쪘다 그래서 정말 뚱뚱해보이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거짓말 해야하나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진짜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랬다. 살 안 쪄보여. 이쁘다." 라고 해주더라. 물론 거짓말과 콩깍지가 섞여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_-;; 그래도 듣다보니 기분은 좋았다;;
등이 파져있어, 날개알을 도려냈던 지렁이같은 흉터가 보이긴 하지만, "등에 칼빵있으니 남자애들이 함부로 못 쳐다볼 것 같아. 안심이야." 라는 애인의 평에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뭐 내 등의 흉터야 내가 평생 안고 살아갈 녀석이니, 남한테 못 보여줄 것도 없다.
근데 수영복 주의사항에 웃긴 문장이 있다. '미끄럼틀을 타지 마세요' 이건 무슨 의미일까 -_-; 왜 이 수영복은 미끄럼틀을 타면 안되는 것일까. 그나저나 나처럼 급박하게 수영복 사는 사람들이 혹시나 회사에 또 있다면, 같은 수영복인 사람이 있거나 한 건 아닐까? 그런 건 좀 싫은데=_=
그래도 살면서 수영복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테니, 잘 산 것 같다. 실내수영장이나 바다에서 앞으로 입고 다녀야겠다. 그리고 삼성 다니는 친구들 뒀다 모하나, 이제 수영복도 샀으니 캐리비안베이 할인권이나 받아서 놀러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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