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친구들이 졸업하지 않은 학생으로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 학교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6년 전의 내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을 오랫만에 만났다는 것은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비록 회사 물품이지만,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퍼줄 수 있어서 또한 좋았다.
어딜 가도 익숙했던 내 자리 내 공간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도 아직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이기에 좋았다.
어찌되었던 툴툴대면서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를 위해 함께 모여준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성열이 표현처럼 "슈퍼가는 동네 주민" 처럼 회사 다니는 주제에, 완전 정장처럼 갖춰입는 오버를 한 것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 되도록이면 멋있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13-4명이 마신 술값을 계산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라곤 "이 술집도 조만간 없어지겠네." 라는 것이었다.
우리 과 사람들이 자주 가는 술집은 1년을 못 버티고 자주 망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술집일수록 더욱 그렇다.
단 한 곳, 시끄럽고 술만 먹는다고 우리를 내쫓은 '옛날순대' 만은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있다.
쫓겨났던 앙금이 더이상 '이모님'을 찾아가지 않게 만들지만, 지나갈 때마다 그 곳의 기억들에 절로 미소짓게 된다.
잘 먹었다고 짹�거리며 인사하는 후배들을 보니, 선배들이 사주는 걸 얻어먹고 다녔던 어린 내가 기억났다.
졸업쟁 주제에 너무 나서는 이화경이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갈런지 솔직히 확신은 안 선다.
최소한 장담할 수 있는 시기는 내 동기가 마지막 졸업하는 내년(내후년?-_-)쯤 까지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어린 아이들과 대화하기 다소 힘들었다. 술 마시고 나면 정말 즐거워지지만 말이다. 역시 그것은 술의 힘.
서로를 지나치게 까대는 내 동기들 특유의 화살꽃히는 정답고 빡신 대화 한 중간에 앉아서,
"바로 이 분위기야." 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그 깊은 곳 어디에선가 크게 안도했다. 아직 그대로다.
아직 절반 정도는 해외에 나가있다.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졸업한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다.
그것이 그들과 멀어지게 만들지는 않나 다소 체념하기도 하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면 그 거리감이 순식간에 좁혀진다.
"동방신기 좋아해." 라는 말에 그 나이에 아직도?? 라는 분위기 속에서, "화경인 원래 그런 거 좋아하니까."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주는 그들이, 자리 바꿔서 내 옆에 앉아달라는 주문에 바로 술잔들고 와주는 그들이.
왜 너 혼자 계산하냐고 당황하는 그들이, 평소에는 술자리에서 피우는 담배를 내가 담배연기 싫어하니까
화장실가서 피고 오는 그들이. 일찍 나선 나와 함께 지하철역 입구까지 같이 가주는 그들이. 참 고맙다.
그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고 지내온 시간들이 확실히 헛 것은 아니다. 우린 그 동안 얼마나 웃고 울었나.
내가 얼마나 까다롭게 굴었고, 내가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했나. 듣기 좋은 소리 싫은 소리 많이 해 주면서 이렇게 익숙해 졌구나.
낯간지러운 달콤한 단어보다, 퉁퉁 던지는 그 배려깊은 말들이 정말 안심이 된다. 나의 굳어있는 얼굴과 지나친 단어 구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기는 그게 내 대학 동기들이고 선배,후배들이라 참 좋다.
이제는 한 학번에 100명이 넘을 정도의 대규모가 되어버렸다고 들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대화하는 사람은 나와 같이 이 곳에 몸바쳐 놀고 울고 일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20대 초반의 그 강력한 기억들이 굉장히 큰 부분으로 차지하고 있어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후배님들과 선배님들과도
언제나 이렇게 쉽게 결속력이 생기는 듯 하다.
학교란 참 달콤하다. 내가 술을 끓지 못하듯이, 아마 평생 학교도 끊지 못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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