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퇴근 길 버스에서 내리려다 바닥에 떨어진 학생증을 주웠다. 비닐 껍딱에 들어있던 것은 증명사진이 붙은 종이 학생증과 버스카드, 모 아이돌 그룹의 사진, 곱게 네 번 접힌 만 원 짜리 한 장 이었다. 학생증을 꺼내보니 우리 집 바로 옆 모모여고에 다니는 1학년(92년생 이었나?)김모모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 원은 참 크고, 그 버스카드에 얼마를 충전해 놓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잃어버린 본인은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까 생각을 하니 한 시라도 빨리 찾아주고 싶었다.
토요일 일어나자마자 12시에-_- 인터넷에서 검색한 모모여고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낸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온갖 교무실이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행정실에 걸었더니 오늘은 놀토(노는 토요일)이라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쉰다는 것이었다. 지인(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지만=_=)중에 고등학교 교직원이 계신데, 휴일에 선생님들은 다 쉬지만, 행정실 직원들은 전혀 쉬지 못한다는 것을 듣고 너무 안쓰러웠던 기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공평하네요! 선생님들이 쉬는 놀토에 왜 행정실 직원들은 근무를 시키는 걸까요!?" 라고 전화 받으신 분께 말씀했더니 쓴 웃음만 지으시더라. 그 분께 내 전화번호와 이름과 학생 정보를 알려드리고 김모모 학생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김모모 학생에게 연락이 와서, 내일(화요일) 저녁 9시에 모모여고 정문 앞에서 보기로 약속을 했다.
퇴근을 그 시간에 맞춰하고 버스에서 내리니 8시 50분, 여유있게 천천히 걸어올라가면서 김모모 학생이 나에게 연락했던 번호로 전화를 했다. 안 받더라. 문득 오늘은 '스승의날' 로 휴교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미디어다음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회사에서 조금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도 삐끗하는 건가 싶어 "김모모 학생은 오늘 학교 안 온걸까!? 그럼 미리 연락을 해 줬어야지!!" 라며 발끈하려는 찰나 모모여고 앞 정문에 사복 입은 여고생 둘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저 아가씨들인가 싶어서 흘끔흘끔 바라보는데 그 쪽도 나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것이 과연 그녀가 김모모 학생이라 그런 것인지, 혹은 자꾸 쳐다보는 것이 불쾌해서 노려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라. 세상에서 제일 당당하고 건방지고 성질 더러운 시기가 여중여고 시기이기 때문에 섣불리 말을 걸기가 무서웠다. 그냥 집으로 올라가려다가 혹시나 해서 "혹시 김모모 학생 있나요?" 라고 했더니 둘이 함께 방긋 웃으면서 자리를 털고 다가왔다. 요즘 세상에 드물게 핸드폰이 없는지 친구 전화로 걸었기 때문에 연락이 안 되었던 것이었다. 가방에서 학생증 꾸러미를 꺼내주었더니 모모 학생은 나에게 M유업의 커피우유를 내밀었다.
뭐 길게 설명했는데, 요약하자면 여고생의 학생증과 돈을 주워서, 돌려주니 답례로 미소와 커피우유를 주더라는 것이다. "너무 고마워서요.."라면서 베시시 웃는 어린 여자애를 보니 오늘 하루 속상했던 것이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T_T 사실 선행을 하는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 별 거 안 되는 만 원 주워서 내 밥 두 끼 먹는 것보다 조금 수고를 들여서 돌려줬을 때 기뻐하는 어린 여자애의 미소가 훨씬 기분 좋은 것이다.
... 집에 와서 씻고 나오니 문자가 와 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모모-" 예의도 바르고. T_T 아직 세상을 밝구나. 내가 귀찮아서 말았는데 그 모 아이돌 그룹 자료들 찾아보면 많이 나올텐데 담에 찾아서 나오면 연락해서 주고 싶어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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