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종부세

LEEHK 2021. 11. 24. 00:57
박근혜 대통령 선거 결과는 당시 굉장힌 쇼크였다.
종일 함께하는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로지 다른 후보 이야기만 있었고, 그런 매체들만 접해 왔었는데 그동안 인식해왔던 세상은 어떤 거였지.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온갖 브랜드 청바지가 유행해도, 청바지 1위는 뱅뱅이라는 뱅뱅이론이 뇌리에 깊게 박혔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터라 세세한 것들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몇 몇 장면들은 떠오른다.
박근혜를 주장하시던 아버지와 밤새 술마시며 정치 이론으로 싸웠다.
“누나 우리도 언젠가 자산이 몇십억 되면 새누리당 지지자가 될 수도 있을거야. 아 정말 새누리당 지지하고 싶다.” 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았었다.


당연히 기부를 하고, 보편적인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가, 사실은 ‘그들만의 리그’ 에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2014년 펭귄과의 크로아티아 여행 당시 기록도 블로그에 있다.
https://blog.daum.net/dongyu48/12382322




그리고 2021년. 종부세를 맞았다. 재산세와 합치면 꽤 금액이 나온다.
“국민 98%와 무관” 하다는 적폐 세력, 다주택자 종부세 대상자가 되었다.
재난지원금도 못 받고, 대신 ‘자부심’ 을 받았는데, 이제는 종부세를 납부한다는 ‘자부심’ 이 더블 크리로 터졌다.

2주택자는 세금에 못 이겨 집을 팔게 하겠다는 공공연한 정책들이 실현 예정이다.
내가 믿어왔고, 지지해왔던 복지와 국가에 대한 신념들이 이런 것이었나…?




부모님의 소득이 없어지고, 기존 집과 대출을 정리하니, 남은 돈으로 거주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값은 오르고, 전세값 월세값 오를 것이 뻔한데, 되는 돈으로 집을 구하면 연세도 많으신 분들이 2년 마다 더 안 좋은 주거 환경으로 이사를 하셔야만 했다.

고민 끝에, 대출을 많이 땡기고, 여러 수단으로 영끌해서 돈을 마련했다. 부모님의 남은 자산에, 내가 보탠 금액만큼, 지분을 나누어 등기를 쳤다.
자금출처 조달 조사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 지분 100%로 처리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남편과 함께 모은 전재산의 상당부분을 선뜻 친정 부모님께 증여할 수도 없었다.

월세가 나오거나 전세를 주고자 하는 수익성 부동산이 아니라, 세입자에게 종부세 부담을 전가할 수도 없다.
부모님이 노후까지 편히 사시길 바라는 안식처이기 때문에 팔아서 정리할 수도 없다.




신랑이랑 엑셀로 세금 상황과 증여,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돌려봤는데 좋은 대안이 나오지가 않는다.
결국은 그냥 종부세 맞으면서 국가 정권이나 정책이 바뀌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국가 정권이 바뀌길 기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뼛속까지 좌파인 우리 신랑은 현타가 와서 멘붕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우리 결혼할 때, 각자 직장생활 모은 돈들은 대부분 집에 보태드리고 남은 3천 만원으로 시작했다.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병가를 내고 수술을 하고, 회복하고도 계속 일했다.
덜 입고 덜 쓰고, 가족만 챙기고, 생활의 안정을 위해, 그 때 그 때 절박한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내고 등기를 쳤다.
법무 비용도 아까워 셀프등기를 했다.
사업하시는 부친의 대출로 어릴 때부터 묵직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 대출이 너무 싫어 없애고 싶었다. 대출 갚기 급급해서 레버리지 투자에는 눈도 안 돌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 따뜻하고 안온한 보금자리 마련해서,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게 마련해놨더니.


국가에서 징벌적 세금을 때린다.


자산을 모으는 목적과 수단이 정당한지 아닌지는 가리지 않고,
지금 2주택인 상황이 투기인지 부양인지 고려치 않고,
그냥 싸잡아서 욕 먹는 적폐 다주택자가 되어 있다.


세수를 마련하기 위해서, 집값을 상승시키고, 부동산과 관련된 각종 세율을 올리고, 공시지가를 현실화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방법이었을까.
옷을 안 사고, 밥은 덜 먹어도, 추운 날씨 몸 따뜻히 뉘일 집을 팔 수는 없으니,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재산세와 종부세를 내면서 살겠지.
정말 영악한 수법이다.


80%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세수를 확보해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서 소득세도 많이 내고, 재산세도 내고, 종부세도 내고,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을 얻는다.



개룡이가 되면 머리를 두드려 맞는다.
그냥 개천에 쳐박혀서 주는 지원금이나 받고 살지, 왜 기어나와서 재산을 보유했냐, 니가 자초한 일이니 세금 많이 내라.
국가에서 주는 메세지가 선명하다.



자선이나 기부는 개인의 선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강압적으로 빼앗아가며 적선하듯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던져준다면,
그간 진정한 자부심으로 행해 왔던, 마음에서 우러나서 했던 많은 것들은 마모되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체게바라를 읽던 청년이, 정말 치열하게 가난과 삶에 투쟁한 결과,
정치와 정당은 철학과 신념의 영역이 아니라 돈의 영역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게 되었다.
정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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