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보물과 만나다

어둠 속의 대화. 2019.

LEEHK 2019. 2. 4. 04:32

https://www.dialogueinthedark.co.kr/

 

 

10년 전 예술의 전당 관람 당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의 시간 관념이 흐트러지는구나.

내가 알던 어둠이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구나.

캔의 점자는 모두 동일하게 써 있구나 배려 없다.

눈이 보이지 않고 도로에 나오면 정말 무섭구나.

어둠 속에서 손을 잡았던 짝지와는 정말 급속도로 마음이 열리는구나.

(그래서인지 그 짝지는 지금도 내 옆 자리에서 일한다. ㅋ)

 

 

 

큰 아이 방학이라 종종 전일 휴가를 내고

둘이서 취학 아동만 할 수 있는 활동을 해주려고 한다.

지난 번에는 하남 스타필드 스포츠 몬스터를 하루에 두 번;;; 갔고

이번에는 어둠 속의 대화를 다녀왔다.

 

 

아이와 다녀올 수 있을까 사실 염려는 많이 했다.

완전한 어둠을 아이가 100분 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 이후 다소 폐소 공포증이 생긴 나는 괜찮을까.

 

원전 사고 전, 함께 오사카 쪽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을 때

키요미즈데라 지하에서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셨던 어머니께서

잘 결정했다 잘 다녀와라 좋은 경험일거다 응원해주신 힘을 받아

아이에게 미리 충분히 설명을 해 주고 동의를 받아 예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초반 5분 정도에 눈물을 보였고

종종 “밝은 데에 가고 싶어!” “너무 어두워서 답답해!”

라며 서너번 이야기했다. 그 때마다 어깨를 다독이고

아이의 정수리에 소리 없이 뽀뽀를 해 주며 어떻게 끝까지 왔는데.

마지막 대화의 시간에서 “처음엔 무서웠지만 나중엔 재밌었어요!”

라고 대답하는 걸 보고 놀랍고도 고마웠다.

집에서부터 멀리 멀리 산 넘고 물 건너 북촌까지 간 김에

북촌 길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경복궁도 한 바퀴 돌았다.

연락이 닿아 시어머니와 아이와 차도 한 잔 마셨고

집에 돌아오며, 그 뒤로 며칠 밤 자기 전에도 계속

아이는 그 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느낌을 되세긴다.

 

아이의 경험 폭과 시야가 넓어지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에

너무 이른 경험을 시킨 게 아닌가 자책하기도 했었는데,

막상 지나고 나니 아이의 소화력은 늘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가 장애인 고용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하며

어둠속의 대화 상설 전시관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참으로 영리하고, 공익적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첫 관람 때는 없던 아이가, 이제 취학 아동이 되어, 그 아이와 함께

두번째 관람을 하게 되어, 다시 한 번 그들의 결정과 행동에 고마웠다.

 

10년 전 전시 중 음료 경험이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가

막상 관람 현장에서 그 상황이 다시 닥치자마자 당황하여

급하게 ‘유제품 알레르기’ 라고 고지를 했으나

늘 그렇듯 ‘음료’ 라고만 점자가 되어 있어

그 분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착오가 생겼다.

“아이에게 줄 음료가 다른 분 것과 바뀌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알레르기) 문제가 생기면 꼭 다시 연락 주세요.”

라는 말을 듣고 그 순간부터 울지도 웃을 수도 없었다.

 

 

나 나름은 크로스 체크를 한답시고 먼저 먹어보고

망고 주스인 것 같다고 생각해 아이를 주었으나

알고보니 복숭아 쿨피스 ㅜㅜ 종이팩 쿨피스는 늘 우유 첨가라

그 때부터 빨리 나가 비상약을 먹여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성분표를 읽어보려고 빈 캔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퇴장하는 내내 아이 상태를 면밀히 살피느라 곤두서 있던 신경은

다행히 캔 쿨피스에는 우유 성분이 없다는 걸 발견하고서야 풀렸다.

 

종이 후기에, 관람 중 식품 섭취가 있다는 것을 미리 고지해주고,

식품 알레르기를 미리 물어보는 프로세스를 추가해달라고 적는데

엄마가 뭘 길게 쓰나 궁금해 옆에 와서 읽던 아이가

내용을 보고 한숨을 쉬고 멀어진다.

그 한숨의 의미를 묻지 않았지만, 그 한숨이 결국 내 한숨이었을까.

 

 

 

 

경복궁을 거닐며,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며,

잠들기 전에 팔을 만지작거리며 “엄마. 우리 엄마 너무 좋아.”

라는 아이를 껴안고, 어둠 속의 대화 당시 네가 무서워 할 때마다

엄마가 소리 없이 머리에 뽀뽀 많이 한 거 느꼈냐고 물으니

“당연히 느꼈지! 엄마 사랑해!” 라는 답에 감동과 행복을 느낀다.

 

 

하남 스타필드에서 스포츠몬스터 사이에;; 본 ‘언더독’ 이나,

이번에 관람한 ‘어둠 속의 대화’ 모두

아이가 타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

많은 대화로 그 컨텐츠들의 소화를 도와주며

아이에게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여건에 감사했다.

 

 

 

동생과 터울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가족 행사는 유아 취향이고;

학기 중 체험활동 결석은 보고서를 써야 하기에;; 기피하는 아이라

되도록 방학 때, 다양한, 큰 아이 만을 위한 활동을 해 주려고 한다.

지나고 나면 결국 다 부모 만족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사랑과 경험들이 표면적인 기억에서는 잊혀져도

무의식 깊은 곳에서 충만한 토대를 다져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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