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보물이가 입학한 지 반 년이 되었다.
여름방학을 어떻게든 보내고, 개학식을 준비하며 가방을 챙겨주다가, 여름방학 숙제인 독서록을 보고 문득 감동했다. 반 년 만에 글씨가 이렇게 예뻐졌다.
아이의 오후를 책임져주시는 할머니께서, 어릴 때 글씨체를 잡아주어야 한다며 글씨쓰기를 8칸 공책 한쪽씩 두어달 연습시키셨는데, 효과가 금새 나타난다. 워낙 그림 재주가 좋고, 공간감각적인 능력과 만들기 실력이 좋은 아이라, 글씨와 그림에서도 재치가 묻어난다.
요즘 감정기복이 무척 심해졌다. 어린이집 시절이 좋았다며 통곡을 하지 않나, 이제 장난감도 다 재미 없어졌고 책도 별로라서 너무 슬프다고 운다. 그러다가도 금새 학교는 좋고 삶이 행복하다며 헤헤거린다. 진정된 뒤에 물어보면,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단다. 사춘기가 벌써 오는 것 같아, 네 몸 속의 호르몬이 너를 조종하는 상황이 점점 많아질거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어느새 옆에 와서 같이 보면서 저 누나가 실력이 좋네, 저 누나가 이쁘네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물론 엄마가 더 예쁘지만!” 이라고 덧붙인다.
체중 감량에 대한 의지치는 없지만, 더이상 늘리고 싶지는 않아서, 가끔 한숨을 쉬면 눈치 빠르게 옆에 다가와 “엄마 날씬해!” 라며 안아온다. 거짓말하지마 라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씨익 웃으며 스킨쉽을 하며 말한다. “엄마 날씬해. 아이 둘 낳은 엄마 중에 제일 날씬해.” ... =_=
아빠를 보고 자란 아이라 그런지 상황 대처 능력이 정치가 수준이다. 순발력이 정말 발군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이 아이에게 엄마는 예쁘구나 속아주며, 엄마는 소중하구나 생각하며 행복에 젖는다.
입학기 단축근무와 돌봄휴가로 어떻게든 1학기와 여름방학을 잘 이겨냈다. 2학기는 훨씬 수월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상황에 접어들었다. 유일하게 겁나는 식품 알레르기는, 영양교사 선생님의 식단 체크 도움을 받아, 대체 도시락을 챙겨 보내며 사소한 특징처럼 여겨질 정도로 무난하게 넘어가고 있다. 소소하게 터져나오는 건강상의 이슈는, 불치병이 아닌 이상 지나가는 감기처럼 넘어가자며 마인드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제어할 수 없고,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울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내 옆에 숨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이 너무나 감사하고 아름답다. 욕심 부릴 필요 없고, 멀리 볼 필요 없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데,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사랑한다 예쁜 내 보물. 누가 낳았는지 정말 이쁘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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