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보물과 만나다

운명, 선물, 행운.

LEEHK 2018. 5. 8. 00:18

큰 아이는 늘 이벤트가 많았다.

이번에도 크고 작은 이벤트로 부모를 들었다놨다 하고 있다.

아이 스스로도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터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모로서 어려운 점은, 실제 내 심리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무한 인내, 긍정, 담담함, 포용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기에

도저히 여력이 없을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고 싶지만

시무룩한 아이 앞에서는 응원과 사랑을 퍼부어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옆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하다.

‘너는 나이가 들어도 어렵구나, 피하고 싶은 일들이 자꾸 오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꽃처럼 사랑스러운, 운명 같은 아이로구나.’

 

 

 

 

큰 애가 운명이라면 둘째는 선물이다.

present 라기보다 surprise 에 가깝다.

큰 애는 부모가 그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애틋한 사랑을 받는다면

둘째는 선을 넘나들며 어이없는 언행을 하며 웃음을 준다.

이틀 내 소고기를 다량 섭취하시더니, 자려고 누워 한 시간도 남게

노래하고 굴러다니고 앉았다 누웠다 춤을 춘다. 에너자이저다.

태어나서 크게 아픈 적도 없고, 작게 아픈 적도 거의 없다.

애교도 많고 엉뚱하고 늘 어이없이 귀엽다.

 

 

 

 

연휴 중 이틀을 하루씩 양가 부모님을 뵙고,

남은 하루. 종일 움직이며 집안일을 하는 신랑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나에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다.

어렵고 어려운 운명같은 아이와, 무한 체력의 선물 같은 아이를

저 남자 없이 내가 건사할 수 있었을까. 아찔하고 고맙다.

 

 

 

 

연휴가 끝나는 한밤 중, 각기 행운, 운명, 선물 같은 애 셋을 재우고,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회사 출입증을 그리워하며 몇 줄 끼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