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5주까지 근무하고 집에 들어온 지 5일 만에, 36주가 되자마자 서울이가 태어났다. 37주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의사 판단으로 응급수술을 진행하였다. 37주 미만이니 조산 범위이지만, 체중이 괜찮고 자가호흡하여 아기는 괜찮았다.
마지막 출근 후 주말부터 부지런히 집 정리하고 중고책 팔고 신생아 용품 꺼내어 정리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아래로 왈칵 맑은 물이 한모금 나왔다. 냉도 아니고 피고 아니고 맑은 물이라 양수인가 싶었는데 더 나오진 않았다. 그냥 잘까 고민하다, 만약 진통 걸리면 자궁파열로 아기를 잃을 수 있는 케이스인지라, 이렇게 애매할 때는 안전하게 병원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일단 람이를 재우고 자정에 옷방으로 가서 캐리어에 입원 짐을 챙겼다. 어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새벽의 분만실로 들어가다.
리트머스 검사 결과 양수는 샌 거 아니라는데 집에 보내주질 않는다. 태동 검사에서 주기적인 자궁수축이 있고, 그 주기가 짧아지니 곧 진통이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새벽 내내 졸다 깨다 하며 태동검사기를 누르다, 저 집에 못 가나요 했더니 첫타임보다 빠르게 수술 들어간다고 입원수속 하란다. ㅜㅜ 오늘 수업 있어 오프라 하셨던 담당 교수님도 새벽에 수술하러 병원 들어오신다고 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누웠다. 거의 입은 게 없는 상태로 침대에서 체중을 재는데 민망하지만 당당했다. 임신해서 늘었다고 ㅜㅜ
이십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난 여체가 아니라 아기 탄생을 위한 모체이다.
그 날 오프인 의사가 새벽에 도착한 뒤, 마취를 시작하자 호흡이 어려워지다. 살짝 겁이 나다. 숨쉬기가 힘들어요. 하니 의사가 손가락을 잡아보라 하고 세게 쥐어보라더니 괜찮다 한다. 조금 지나니 괜찮아지다.
여기저기 꼬집어보며 아프냐 묻더니 괜찮다 하자 수술 시작한다 하다. 감각은 있으나 통증은 없다.
아프면 어떡하지 걱정했으나 다행히 배를 쓱슥 자르는 느낌, 자른 살을 위아래로 벌리는 느낌, 잡아당기는 느낌이 나지만 아프지는 않다.
이리저리 살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한동안 나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붙들고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잘 자라고 건강하고 부모님과 행복하라는 축복이 나즈막히 수술실을 울린다.
드디어 나에게 아기를 보여주다. 작고 쭈글쭈글하고 붉고 태지에 둘러싸여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안으로 중얼중얼, 감사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빈번히 외치게 된다.
아기 나갈게요. 하고 아기는 사라지고 교수님 말고 다른 의사 두 분이 담소를 나누며 봉합과 뒤처리를 하는 것 같다. 재워드릴지 묻기에 재워달라 하다. 진통 없는 수술은 이런 거구나, 힘들이지 않고 아기가 절로 나온 것 같아 신기해하며 잠들다.
깨어보니 회복실. 이불을 덮어주고 배 위에 묵직한 게 있다. 첫타임 수술보다 앞서 응급으로 들어갈 때는 한적했는데, 어느새 북적북적 해지다. 옆 침대에 람이보다 어린 아기가 엄마를 외치며 울고 있다. 저 아가는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안타까워 하다.
밖으로 나오니 신랑이 내 운동화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입원 수속한 뒤에 병실에 놓고 와도 됐을텐데 장장 서너시간 내내 들고 있었단다. 그가 겪는 두번째 아이 탄생이지만, 허둥지둥 당황하는 모습이, 그에게도 참으로 긴장되는 일이었구나 싶었다. 큰 애 때는 자연분만이라 진통부터 탯줄 자를 때까지 내내 함께 있었지만, 둘째는 수술실 밖에서 계속 기다리느라 더욱 불안하고 긴장해 보였다.
얼굴 확인하고 웃고, 신랑 폰에 있는 막 태어난 아기 사진을 보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것은 단순히 이동을 위해서라며 안심하라고 설명해주다. 특실이라 다른 건물 입원실로 이동하는 길이 길다. 배가 비었는데 큰 위화감이 없다.
이렇게 4주 먼저 아기가 나와버렸네. 입원실에 와서 작은 여자 간호사와 이동사 아저씨가 침대로 옮겨주더니 살뜰히 보살펴주다.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 람이가 와서 북적하고, 밤에는 신랑과 지내다. 배가 아파 힘들었으나, 자궁근종 개복수술 때보다는 회복이 빨랐다.
삼일 뒤 첫 수유하러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 아기를 두번째로 만나다. 작고 쭈글거리고 못생겼다. 람이 애기 때랑 달라 이건 누구지 생각해보니 친정 아버지랑 똑닮았다. "어떡해! 아빠랑 똑같애!!" 하니 "잘생겼구만!" 이라고 대답하시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지 못하신 우리 아버지. 내가 나중에 우리 아빠의 엄마로 태어나 잘 돌보아주고싶다고 몇 번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아기가 우리 아부지를 닮은건가 싶기도 하다.
젖을 빨며 오물거리지만 아직 젖이 돌지 않아 신생아실로 들여보내다. 람이 때는 패닉이었는데, 둘째라고 여유롭게 수유하니 기분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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