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보물과 만나다

6.25와 붕어빵.

LEEHK 2016. 10. 10. 15:55

돌 즈음 15만원 주고 전집을 사십 권 정도 들인 것을 제외하곤

도서는 내 맘에 들거나 아이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단권 구매한다.

서너살부터 어린이집에서 월 1~2만원 정도 추가 지불하고 참여하는

독서 특활을 통해 주 두어권씩 받아오는 책이 전집 형태의 구성이라,

큰 책장의 절반 정도는 이미 람이의 책이 가득하다.

 

무심한 맞벌이 부모는 집에서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훌륭한 어린이집에서 누리과정에 맞추어 한글 수업을 해주시고,

매일 잠자리에서 본인이 골라온 책을 두 권씩 읽어주었더니

6세부터는 글을 읽고, 글씨를 그린다. (쓴다. 가 아니다;;)

 

 

그리고 람이는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보는 어린이가 되었다.

14세 이하 어린이 아이핀-_-을 가입해서 대출증을 만들어주었고,

함께 주 1회 정도 방문하여 책을 빌리고 반납한다.

둘째가 얌전히 자는 시간에 놀아달라고 람이가 달려와도

“지금은 각자 책을 읽는 시간이야.” 라며 독서하는 호사도 누린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그림책 중에는 음식 관련된 책이 참 많은데

어느 밤, 그 중 붕어빵을 가리키며 먹고 싶다고 하였다.

람이는 음식 알러지가 있고, 아빠 닮아 과식을 하지 않는다.

요즘 피부가 안 좋아 인스턴트 과자는 하루에 한 번만 먹자고 하니

본인 스스로 횟수를 세어가며 더 조르지 않는 자제력도 있다.

그렇기에 아이가 먹고자 하는 것은 웬만하면 구해주는 편이다.

 

 

 

도서관 가는 길에 붕어빵 파는 아저씨가 있다.

단가 때문인지 반죽에 우유 계란이 안 들어있다고 하였다.

람이는 6세가 되며 계란이 조금씩 첨가된 식품은 가능해졌기에

설사 반죽에 뭔가가 들어있다 해도 소량이라면 괜찮으리라 보았다.

붕어빵 먹자 했을 때 아이는 “제일 좋은 날이야!” 라며 즐거워했고

도서관 가는 날이라기보다 붕어빵 먹는 날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붕어빵 만드는 과정을 함께 보고, “멋지다!” 라는 아이의 천진함에

“좋아보이지? 겨울에 가스 냄새 죽어~” 아저씨의 찌푸린 표정.

아이의 첫 붕어빵 설레임에서 현실감각이 돌아오다.

 

 

요즘 뭐든 직업의 영속성 측면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붕어빵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생각해보면

수작업에서 균등한 품질을 내는 게 아닌가 싶다.

여러개를 만들 때 반죽의 양, 팥의 양, 굽기 상태가 균일해야 한다.

오랜 숙련 과정을 거쳐 사람이 자동화 되는 것, 그것이 달인일테지.

 

기계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많은 수작업들이 자동화되고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른 수요예측, 재고 관리는 사람의 감이 최고일테고,

소량 수요와 낮은 가격으로 당분간 대기업의 횡포에서 안전할테지.

하지만 이미 반죽과 팥 등의 공급은 대형 체인화 되어가는 것 같고,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잠재적 위험군임은 맞는 것 같다.

 

 

 

얼마 전 신랑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30대에 아이를 낳았는데, 우리 태어나기 30년 전이면 6.25야.”

확 와 닿았다. 30년 뒤면 아이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리라.

상전벽해한 뒤에, 현역에서 멀어진 감은 힘을 잃으리라.

그럼에도 막연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싶다. 나의 생존과 부모의 부양을 위해서.

라던 생각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라는 이유가 더 절실해지다.

 

 

람이의 첫 붕어빵을 기념하며 상념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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