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때부터 있던 도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해군이 강대하던 곳, 로마 황제의 휴양지, 20여년 전 폭격을 경험하고, 이 곳을 사랑하는 유럽의 지성인들이 포화가 쏟아지는 도시로 들어와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지켜낸 곳. 수 많은 드라마가 직경 일 키로도 안 되는 작은 올드시티 안에 다 들어있다.
감동적이지만 그저그런 흔해빠진 관광지 물가과 적당한 세련됨으로 무장된 것이 오히려 마음의 거리를 갖게 했다. 관광 스팟 어딘지 관심 두지 않고 그저 걸어다녔다. 어디든 찍기만 하면 예술이라 사진은 많지만, 내심 자그레브에 더 오래 있을 걸 그랬다 싶은 기분도 들었다. 지나다 들어간 성당에서 몇 쿠나를 내고 초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었다. 바다는 맑고 투명하고 예뻐서 제주도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사람의 손이 닿은 곳들 뿐이라 건물들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골목골목 호기심을 자극하는 계단이 많았지만, 오르막길에 취약한지라 포기- 펭귄의 사진 하나를 가져왔다. 조금 짜지만, 분명히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와 들어간 플로체게이트 근처 카페에서 한글 메뉴판을 발견하고 반가운 나머지 먹물리조또를 시켰다. 노솔트 외치는 걸 잊고 한 첫 주문인데, 먹다가 물을 부어버렸다. 짠기를 헹궈서 쌀을 섭취하다 결국 남기고 비틀비틀 집에 돌아가서 기절해 잠들어버렸다. 이 식당은 빵도 짰다. 와인과 식사를 함께 했는데 온 몸에 소금이 빠르게 돌고 있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기 음식 너무 짜다. 노솔트를 외쳐도 원래 바다 재료 자체의 짠기가 있어, 한국 음식보다는 조금 더 간기가 있다. 현지인들 먹는대로 먹으면 한 끼는 그럭저럭 버틴다해도 두 끼 이상 먹으면 바로 역치를 넘어버려 이후 모든 음식이 싫어지게 된다. 더더욱 자그레브가 그리웠다. 거긴 이렇게 물가가 비싸지도 않았고, 음식도 여기보단 덜 짰다. 자그레브에서 4만 원 주고 산 크로스백을 두브르브니크에서는 8만 원 넘게 불렀다. 공산품은 관광지에서 사는 거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숙소에서 한 숨 자고 다시 나와, 올드시티 중앙 통로를 가로질러 걸어가, 끌리는 카페에 가서 앉아 커피를 시켰다. 분명히 노밀크 노슈거를 외쳤건만, 나온 건 베트남 커피 G7 3 in 1과 맛이 똑같았다. 달달한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광장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질 때 오래된 이 건물들이 어떤 빛깔을 내는지, 창가의 동전 모양 차양이 빛을 받았을 때 내는 반짝거림, 지붕의 섬세한 무늬, 덧창이 열리는 방식,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 따뜻한 기운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았다. 건물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살피는 동상의 얼굴에 지는 해가 걸려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현지 음악이 지겨워질 때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새들이 번잡스럽게 날아다니며 내는 소리가 참으로 요란해서 이유가 궁금했다. 멍하니 시간을 흘러보내며 서서히 이 도시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이북으로 유토피아를 읽던 펭귄은 그 책을 선민사상이라고 요약해주었다. 구글 리뷰가 가장 많은 가게는 덜 짠 곳이라는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어 준 레스토랑에서 밸런스가 잘 맞는 와인을 곁들인, 노솔트라 한국 음식보다 살짝 더 짠- 먹을 수 있는 수준의- 간기를 가진 식사를 하며, 많이 웃었다. 펭귄과 나누는 대화는 때로는 현학적이고, 때로는 엉뚱하고, 수시로 유머가 넘친다.
플로체게이트 주변을 떠돌다 잠깐 앉아있던 부두에서 모서리가 움푹 파인 것을 보고, 밧줄의 마찰로 이렇게 둘이 깎여 나갈 정도라면,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온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국 하나에서 수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지나다녔는지 바닥의 돌은 울퉁불퉁하되, 반질반질 매끄러웠다. 무너진듯 세련된듯 오래된듯한 도시가 밤이 되어도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며,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이 이 도시를 부수려면 차라리 나를 죽여라 하며 포화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온 이유를 알듯 모를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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