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기 전부터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보습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임을, 스테로이드 연고 쓰고 항히스타민제제를 먹어야 정상 생활이 가능함을, 내 아이가 아토피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일 년 반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인생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심신으로 받아들이는 데 (폐렴 입원을 세 번 정도 경험하고, 관절 염증으로 아이가 잘 못 걷는 것을 경험하며-_- 접히는 부위 이외에는 피부가 맑아졌고 밤에 자다 깨어 일어나는 난리의 발생 횟수가 줄었기에- 아이와 상호소통이 되며-) 다시 일 년 반 정도가 걸렸다.
두 돌 즈음에는 큰 기대가 생기지 않아 스킵했던 피검사를 세 돌 기념으로 했다. 유니캡 테스트 결과 total IgE 는 조금 올랐고, 마스트의 total IgE는 조금 떨어져 총 수치의 변화는 크게 유의해보이지 않았다. 다만 캡테스트 세부 항목 중 우유 달걀 항원에 대한 IgE가 돌 때보다 많이 낮아져 있었다. 여전히 알러지 수준이지만, 비슷한 수치의 다른 것들은 반응 없이 잘 먹기도 해서, 우유 유발검사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병원 예약 날 급 출장이 잡혀, 엄청 바쁜 신랑이 눈치보며 휴가를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창 회의 중에 메세지를 받았다.
"얼굴에 조금 묻혔는데 바로 올라와서 먹어보지도 못하고 유시먹고 락티 바르고 주사 맞고 대기중 입니다. ㅋㅋㅋ 선생님이 급 좌절 하심. "
먹여보지도 못하고 테스트 실패. 우유가 이따위라 달걀은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선생님이 일 년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단다. 별 기대도 안했거니와 (사실 조금 했다. ㅜㅜ 콩알만큼. ㅜㅜㅜㅜ) 인생에 중요한 것은 우유 달걀 따위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에 그저 담담할 수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ㅜㅜㅜㅜ 우리 인생에 조금 불편한 것과 치명적인 것은 구분해서 보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유가 아니야."
러빙헛에서 외식하고, 브로테나인에서 잔뜩 빵을 사고 집에 갔을 신랑의 마음을 이해하며 그렇게 말했다. 채식주의자들이 고기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성 단백질을 거부하는 것에 감사하며, 아이에게 먹일 것들을 구할 경로가 좁을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님을 상기했다. 또한 우유를 살짝 피부에 묻히기만 해도 문제가 생기는 예민한 아이를 지금까지 두드러기 몇 번 없이 잘 키워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두 돌 이후 부터는 월에 몇 번 이하로 약을 쓰는데도 정상 생활이 가능했으니까. 다소 히스테릭할 정도로 아이의 먹거리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함께 발맞추어 준 가족들과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정말 많이 감사했다. 아이가 잘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오늘 유발검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마음이 넓어지려면 찢어지게 아파야 하는 것 같다. 죽기 직전까지 갔던 수많은 날들을 지나, 이제 우유 따위 불편한 것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아이는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우유 달걀 빼도 배부르게 먹일 맛있고 건강한 식자재들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우유가 아니다. 비록 조금 실망했지만 금새 털고, 아이가 이겨낼 준비가 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면 된다. 되면 좋고, 안 되도 어쩔 수 없는거다. 다시 철저한 식이제한, 환경관리. 까짓것 해주지 뭐. 사랑한다 내 아들. 우유 달걀 없어도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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