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생각이 자라나면서 매일 매일 어록이 나오는데, 어제 일도 깜빡깜빡 하는 정신 때문에 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쉽다. 그 중 몇 가지만 건져서 기록한다.
1.
아이가 새벽에 깨서 뒤척이면 조건반사처럼 벌떡 일어나게되는데, 하루는 아이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엄마... 꿈에 안 나와."
"응? 람이 뭐가 안 나와??"
"폴리..."
어이가 없어 일어나 살펴보니 새근새근 자고 있다. 잠꼬대도 귀여운데, '꿈'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2.
아기때부터 "람이 사랑해~ 엄마가 우리 람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랑해~" 를 반복하며 온 몸에 뽀뽀를 해 주었다. 작년에는 발바닥에 뽀뽀하다 발톱에 긁혀 각막에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뽀뽀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전보다 조심스럽게 하기는 하지만, 나도 기쁘고 아이도 좋아한다.
아이가 상호작용이 되는 나이가 되면서, 특히 세 돌 무렵에는 아이도 나에게 뽀뽀를 해주기 시작했다. 흥에 겨우면, 엄마 몸 중 아무데나 잡히는대로 뽀뽀를 해준다.
요즘 정신과 육체가 심하게 소진되어 맥없이 방에 누워있는 날이 종종 있었다. 아무런 기력도 의욕도 없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아이가 엄마 몸 위로 과한 점프를 한다. 쿵 하는 충격에 숨이 막혀온다.
"람아 엄마 아파...!!"
하면 배시시 웃으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발가락부터 뽀뽀를 시작해서 다리를 타고 올라와 몸과 팔, 얼굴, 이마, 머리 꼭대기까지 뽀뽀를 해준다. 내가 아이에게 해 주었던 그대로, 장난기어린 얼굴로 사랑을 부어준다.
지친 심신에 아이의 사랑을 가득 받으면 살아갈 힘과 이유 또한 다시 차오른다.
3.
나는 (그렇게 안 보이지만-_-) 친한 사람들에게는 어리광과 애교를 부리는 편인데, 아이에게도 종종 그렇게 할 때가 있다.
"람아 엄마 외로워~ 안아줘~ 으응~~?"
라고 팔 벌리며 동동거리면 아이가 건성으로 빠르게 대답한다.
"엄마 많이 사랑해 걱정하지마. 얘가 엄마를 지켜줄거야"
또봇 알을 건네주곤 본인 할 일 하러 빠르게 나가신다. 쿨한 남자~
4.
저녁에 마트를 갔다. 카시트에 앉혔더니 내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말한다.
"깜깜함 때 나가면 엄마 무섭지?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대낮에 터널을 지나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데, 전에 내가 깜깜해서 무섭다고 한 적이 있나보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느 순간부터 터널만 지나가면 아이가 급히 손짓한다. 다가가면 한 손으로는 내 머리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눈을 가려준다. 빠져나오려 하면 더욱 세게 붙잡으며 말한다.
"아직이야~ 무섭지? 내가 지켜줄게~"
5.
마트를 갔다. 장난감 코너에서 뱅뱅 도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본인 마음에 꼭 드는 것을 하나 잡으면 바로 집에 가자고 한다. 단 한 개만 사준다는 원칙을 항상 강조했기에, 다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고심해서 하나만 고르고, 그 하나를 택한 뒤에는 미련없이 돌아서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 그 한 개는 꼭 사주고 싶다.
또봇을 하나 골라 카트에 넣으려고 하기에, 장난 반, 매번 올 때마다 사주는 버릇이 들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 반으로 말했다.
"람이가 그거 집에 들고 가. 혼자 들고갈 수 있으면 사줄게."
몇 번 반복해서 말하자, 자기 몸만한 박스를 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륙미터 갔을까, 아이가 박스를 내려놓고 말한다.
"이거 별로야."
"무거워? 안 살래?"
"응."
함께 돌아가 또봇을 제자리에 가져다놓았다. 그 뒤 잡는 장난감마다 혼자 들고갈 수 있어야 사준다고 했더니 쿨하게 서점으로 들어가 작은 또봇퍼즐을 골라 가볍게 들고 삼십미터쯤 가더니 말한다
"이거 별로야."
다시 가져다 놓고, 장난감은 결국 사지 않았다.
6.
이제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억지로 씻길 수가 없다. 한두번 그랬는데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아이를 설득하고 온갖 감안이설로 꼬여내는데, 간혹 체력이 딸릴 때는 선전포고를 한다.
"람이 안 씻어서 찌지해. 엄마 옆에 오지 마. 목욕하면 안아줄게~ 씻으러 갈까?"
보통은 넘어가서 씻으러 가는데, 어제는 아이가 고집을 피웠다. 한창 혼자 놀다가 슬금슬금 다가와 말한다.
"엄마 만지고 싶어~"
"람이 씻고 오면 안아줄게, 씻으러 갈까?"
거절의 의미인지 본인의 이불을 돌돌 말고 바닥에 누워있는 것까지 보고 깜빡 잠들었다. 새벽에 깨 보니 온 가족이 자고 있다. 결국 엄마 안지 않고 혼자 잠들었다. 물론 같은 방에서 자긴 했지만, 아이가 고집을 피우면서 독립적으로 혼자 잠든 것은 처음이라 아이의 성장이 실감되면서도, 이 아이를 앞으로 어찌 말로 설득하나 앞 길이 구만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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