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며칠 전까지 일했다. 얼음 얼어 미끄러운 육교를 거북이 걸음으로 건너고, 눈 쌓인 내리막길을 양 팔 벌려 펭귄처럼 다녔다. 인수인계로 문서 작업과 회의를 잔뜩 하면서도 덕배가 위험할까봐 친구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 하면서 하루하루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았다.
출산 후 몸이 너무 아팠다. 산후풍 따위 남의 이야기일 거라는 만용은 손가락으로 눌러 움푹 파인 발목이 다시 올라오지 않음과 동시에 나를 패닉에 빠뜨렸다. 손목이 아파 작은 쿠션을 들지 못하고 흐느꼈을 때, 울음을 그치지 않는 5kg 람이를 안고 달래며 허리와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을 때는 산후 우울증의 피크였다. 봄에는 아토피 진단을 받고, 여름에는 땀띠로 에어컨 설치한 작은 방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오며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의 고립, 나는 울고 아이는 아팠다.
가을이 되고 람이의 상태가 좋아지고 산후풍에 시달리던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 수유 간격이 늘어나며 보름에 한두 번은 아이 없이 두세시간의 외출이 가능해졌다.울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이던 외계생명체는 엄마를 알아보고 웃고 매달리며 점점 귀여워졌다.
람이의 아토피는 그럭저럭 나의 통제 하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종종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고 음식을 조심하며, 통목욕에 신경쓰고 배변시 물로 닦아 수시로 보습한다. 하지만 전처럼 절망스럽지도 슬프지도 않다.
"아토피는 그저 아이의 일부이고 특성일 뿐, 아이=아토피는 아니다." 는 작년 수첩 제일 앞에 써 두었던 문장이다. 아토피 진단 후 많이 읽고 보고 공부하고 다짐했으나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마음을 잡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었었다. 돌이 되어서야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평온을 얻었다.
돌잔치는, 행사 준비하기 좋아하는 내가 일 년 만에 주최하는 자리다. 직계 가족 모임과 친구 모임, 모임에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람이와 초보엄마를 따뜻하게 도와주신 분들께 답례품 전달하는 여러 방법들을 고민하며,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장소를 물색하고 여러 종류의 답례품과 식순을 정하고 인원을 정리하며 서서히 활기가 돌아왔다. 아이를 보며 혼자 다 하기는 어려우니, 일부는 가족과, 일부는 업체와 분담하며 여유롭게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사회적이고 조직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들르고 지인을 만나고 미뤄두었던 검진을 받았다. 람이 어린이집 오티와 친구 모임, 병원 예약 등으로 일정표의 빈칸을 메우는 재미를 다시 느끼고 있다. 5월에 복직하려면 2,3,4월을 돌과 경조사, 람이 예방접종과 어린이집 적응 프로그램, 나의 병원 검진과 답례품 전달을 위해 사람 만나기 등으로 꽉 채워 보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집에서 아기만 보던 똑같은 일상에 익숙해 있다가, 삼십 년 몸에 배인 습관대로 계획을 하고 메모하고 일정을 잡고 추진하려니, 기분이 묘하다. 낯설음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고 기쁘다. 나는 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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