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혼자 명동.

LEEHK 2012. 1. 16. 01:30

람이와 신랑을 일산 시댁에 맡기고 혼자 명동에 나가 결혼식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스타벅스에서 수다 떨다가 피자모레에 가서 치즈와 밀가루를 섭취했다. 교통 시간 포함해서 람이와 7시간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던 건 처음이라 두근거리며 달려갔더니 람이는 엄마를 소 닭 보듯 했다. 까만색 원피스를 벗고 매일 입는 하얀 반팔 면티셔츠와 회색 면 고무줄 바지를 입고 나오니 울먹이며 손을 내밀고 난리다. 차려 입은 엄마는 못 알아본 것일까?

윤기가 흐르는 재질의 몸에 달라 붙는 원피스에 살색 스타킹, 까만색 부츠를 신고 알파카 코트의 허리 끈을 졸리 맸다. 길게 늘어지는 귀걸이를 까만색 토드백에서 꺼내 달고 버스에서 내려 걷고 있는데 내 발 끝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나 좋은 거다. 생각해보니 구두를 신은 게 임신 기간 포함 약 2년 만이다. 매일 부드러운 면에 헐렁하고 늘어지고 가끔은 구멍도 뚫린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집에서 아이를 보다가 오랜만에 꾸민 내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엄마가 된 뒤로 죽은 듯 지내던 여자로서의 내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세네시간 동안의 수다도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된다.

애 엄마라 어쩔 수 없는지, 자재하려 애를 썼지만 결국 걀걀대는 람이 동영상 하나를 틀어 보여주고 말았다. 팔불출 짓거리 미혼인 친구들 앞에서 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아들의 예쁜 모습을 공유하고 싶어 안달이 나더라. 어쩔 수 없었다.

시댁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으니 람이는 젖을 먹겠다고 찡찡대며 엄마 옷을 들추고, 젖 맛나게 먹고 나서는 행복해져서 엄마가 옆에 없어도 다시 잘 놀았다. 하루종일 람이는 웃으며 잘 놀았단다. 워낙 잘 돌보아주고, 사랑해주는 가족 사이에서 지내면서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정착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까다롭고 예민하고 정말 힘든 아기였는데 요즘은 점점 수월해진다. 고되고 빛 못 보고 외출도 못 하던 지난 일 년의 생활을 보상 받는 것 같다. 뿌듯하고 보람차다.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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