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에 밥을 담고 집을 나선다. 버스시간까지 합쳐 약 40분 정도 뒤면 자리에 앉아 사내 메신저에 로그인한다. 이런저런 회의, 교육, 스터디, 점심시간, 옥상, 그리고 하루 종 대부분을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보낸다. 오후 1시경 오른쪽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 때문에 우산을 펴서 비스듬이 걸쳐놓는다. 어느덧 해가 서편으로 넘어가 우산을 고이 접어 넣으며 계절을 가늠한다. 야근하거나 퇴근하거나를 가르는 것은 저녁식사를 하느냐 마느냐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메신저 로그아웃 후 1시간 뒤에 현관에 들어선다. 저녁 시간은 차가 막힌다. PMP에 담은 그레이스아나토미를 보던가, 책을 읽던가. 멍때리며 음악을 듣는다. 가끔 급박해져서 머신러닝 원서를 정신없이 읽기도 한다. 역시 이동 중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 마음은 자꾸 널뛰기를 한다. 그제는 행복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하늘을 나는것만 같았다. 눈 앞에 황금밭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너무 지쳐서 점심시간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힘들다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멍하다. 어제보다는 행복하고, 그제보다는 좋지 않다.
좀 더 편하고 즐겁기 위해서 집중하는 목표가 매번 다른데, 이번 바램은 말 적게하기다. 말 하고 싶을 때 세 번 참고 말하자고 몇 년 전부터 생각했으나 10번 말하고 싶을 때 1번 참는 것 같다. 100번 말하고 싶을 때 100번 말하던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자위하지만 별 쓸데가 없다.
어느 책에서는 단점은 어차피 고칠 수 없는 것이니 장점에 집중하라고 하고, 어느 책에서는 단점을 잘 알고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반되는 두 입장 모두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니 아직 선택을 하지 못했나보다. 혹은 포기를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 이제는 쓸데없어졌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선택권도 없었고 곤란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으니 뭐라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말로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놓기가 너무 어렵다. 욕심이 너무 많은가보다. 갖지 못하면 화가 나고 막상 가지면 벅차한다.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하지만 사실 많아서 벅차다는 느낌보다 많아서 뿌듯하고 기쁘다는 마음이 강하다. 실제로 힘들게 하는 것은 가진 것을 다 케어하지 못해서 간혹 하는 실수이다. 굉장히 사소한 실수라도 못 견디는 성질머리, 참으로 지친다.
몇 달 전에는 뭔가 더 갖고 싶어서 욕심내고 있었고, 지금은 쌓인 것들을 다 해치우려고 허덕대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신선이 되고 싶은 이상과는 별개로, 산에 가면 바다가 끌리고 바다에 가면 산을 그리워하는 세속적인 삶이 현실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출렁되며 기복이 심한 것일 거다.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발전하고 있다는 확신은 있다. 어쩌면 자기세뇌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느낌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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