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술 마신 날 새벽.

LEEHK 2009. 9. 9. 01:16

 

 

 성남에서 양재로 이사한 이후 귀가시간이 빨라졌다. 강남역에서 약속을 잡을 경우 음악을 들으며 걸어오기도 한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 안 자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집에 오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하루 있었던 일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삼십분 정도 대화 후에 신랑을 재운다.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기도 하지만 술 마신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베어드는 담배냄새 때문에 꼭 샤워를 하게 된다.

 찬 물로 씻었는데도 불구하고 훈훈한 공기가 만들어지는 욕실을 나와 마루에 앉아 선풍기에 머리를 말린다.

 술기운은 분명히 가셨는데 피곤함에 취해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퐁퐁 솟아오른다.

 

 자고있는 사람을 깨울 수도 없어 결국 컴퓨터를 켠다. 평소 잘 들어가지도 않는 메신저에도 대화상대는 없다.

 멍하니 블로그에 글을 끄적거리며 예전 글들을 확인하거나 지인들의 흔적들을 찾아 해매인다.

 가장 사람이 고픈 시간은 술마신 날 새벽이 아닐까 싶다. 시간은 금방 흘러가고 심란함은 커지기만 한다.

 출근시간 걱정에 간신히 마음을 추스려 억지로 잠을 청하고, 아침이 되면 어젯밤의 외로움이며 잡념들을 까맣게 잊는다.

 

 

 다시 술마신 새벽이 오면, 병이 도졌구나 한심한 기분이 들다가도,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싱숭생숭 해진다.

 마치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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