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반부. 대한민국의 현실. '왜 이렇게 되었나. 무엇이 문제인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 느끼던 이야기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며 전율했다. 책을 읽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밤 12시부터 1시, 2시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탄사를 내뱉었다. 첫 장을 넘긴 뒤 며칠 간은 누구랑 이야기를 해도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만큼 흠뻑 빠져있었다.
자주 가는 야탑역의 홈에버에는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들을 향해 손짓하며 인사하는 젊은 청년들이 있다. 매장 입구에도 하이힐에 정장을 갖춰입은 어린 아가씨들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을 반복한다. 그녀의 90도 각도는 어찌나 절도가 있는지 감탄스럽다. '고객 만족' 을 넘어 '고객 졸도' 를 향해 달려가는 CRM 부서에서는 차별화 요소, 혹은 당연한 서비스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보는 나는 답답했다. 만약 그네들이, 은행 신입사원처럼 지점에 몇 달간 고객을 가까이 접하게 하는 교육의 일환으로 그 일을 하는 거라면 적당할 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그네들의 직업이 되는 것은 결사 반대다. 직업이라는 것은, 그 분야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창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기에 직업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아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단순 작업으로 20대를 보내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사만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그네들 전원이 매장에서 조금 더 책임있는 업무를 맡을 수 있게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참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비정규적을 대규모로 해고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이랜드 측이 결국은 아무 문제 없이 다른 비정규직 인력을 충원해서 정상적인 영업으르 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미 현실이 어떤 지경인 지 알 수 있다. 파트 타임 잡은 파트 타임 잡일 뿐이다. 아르바이트가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직업이 되려면 일본처럼 임금 수준이 높아지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기업은 젊은 사람들을 저렴한 비정규직 임금에 활용하다가 금새 다른 젊은 인력으로 바꿔 쓸 수 있다. 비정규적으로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의무 전환해야 하는 법규제가, 결국 2년 만에 짤리거나, 소속만 다른 파견업체로 새로 입사하도록 만드는 부작용을 내뱉었음은 너무나 적나라해서 슬프지도 않다.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나' 에 대해서는 조리있게 설명을 잘 해준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가며 또렷하게 설명한다. 그 논리적인 설명들이 너무나 후련해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해 준다.
2. 후반부. 해법.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을 읽으면서 속이 시원하면 할 수록,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해줄까? 라는 기대감과 걱정이 책을 읽는 속도를 점점 느리게 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분명히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는 10대 중반이나 후반 독자가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결국 '기성세대' 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개미지옥에서 단결해서 개미귀신과 싸우면 이길 수 있지만, 모두 조금이라도 늦게 잡아먹히려고 다른 사람들을 밑으로 떨궈내고 있다.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반항만 하면, 결국 이권을 모두 빼앗기고 뒤쳐지기만 한다는 것이 뼛 속 깊이 세겨져 있는 것이 지금 20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현 상황에서 20대의 진리다. 그네들이 보고 듣고 배우고 체득한 것이 결국 '빡시게 해서 올라가야 한다' 라는 유일한 진리다.
그래서 10대가 독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대학 등록금을 없앤 프랑스의 10대 시위처럼, 우리나라 10대들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러기엔 우리나라의 경직된 교육 및 치열한 입시제도가 크나큰 장벽이다.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라고 외치는 교실이데아가 과연 20대의 현실보다 무엇이 나을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이 많은 정부나, 지역지자체, 기업 등 기성 세대들이 20대를 위해 조금 더 많은 것을 양보해주기를 바래야 한다.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중소기업에서도 더 많은 기회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근무여건이 향상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가지 않아도 보람차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책을 더 많이 읽어보아야 하는 것은. '요즘 20대들이 문제' 라고 말하는 그런 기성세대들일 것이다.
아직 사회에 나가지 않아서, 오히려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20대 초입의 동생에게 물어본 평은 "정말 맞는 얘기들인데, 답답했어.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없진 않았는데, 답답한 게 훨씬 컸어." 라는 말과 함께 한숨 수십 번이었다. 이 책을 읽은 20대가 불합리한 현실을 알고 취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개미귀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올라가려고 하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 이외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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