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시간과 거리.

LEEHK 2007. 11. 23. 02:30

 항상 그랬지만, 내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사람에 관한 문제이다. 나는 내 일생에 거쳐 내 자신에 대해 타협하고, 타인을 파악해 나가고 있다. 사실 나는 내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탐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여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 둥글게 적응하기 위해 고쳐나가고 고쳐나가고 있지만, 정히 고쳐지지 않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좌절하고 상처받으며 조금씩 타협해 나간다. 내가 바뀌던지, 포기하고 불이익을 받아들인다. 정답은 없어도 최적해는 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지만, 그 선을 긋는 법도 배운다. 선을 그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빠져들어가 당황하기도 한다. 머리로 아무리 쥐어짜고 틀을 잡아 보아도, 마음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순간의 충동에 굉장히 약한 게 사람이지만, 결국 관계에 가장 영향력이 높은 변수는 시간과 거리이다. 누구 말처럼 몇 달간 보지 않으면 마음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미운정도 정이라고, 오래 쌓인 마음이 결국 사람을 가장 많이 지배하기도 한다.

 스무살 때 학교 축제로 과 주점에서 밤을 샌 적이 있다. 특히 우리 학교 축제는 굉장히 떠들석 하고 온갖 사람이 마구 들락거려 안그래도 좁은 학교가 굉장히 혼잡하다. 그러나 새벽 3시를 넘어가면 주변이 조용해진다. 떠돌이들과 손님들은 모두 집에 가고, 학교 자체에 깊은 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남는다. 그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이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늦봄이기 때문에 아직 밤은 쌀쌀하다. 네모진 대용량 기름캔에 여기저기서 주워온 막대기를 집어넣고 불을 피우면 근사한 모닥불이 된다. 옆에 앉은 이가 치는 기타소리에 맞춰 '서른즈음에' '세월이가면', 그리고 이정열 씨와 안치환 씨, 김광석 씨의 여러 곡들을 부른다.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적막 가운데 들리는 노래소리를 귓가에 흘리면서 '나중에 이 때를 생각하며 이 감각을 기억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이정열 씨의 '친구에게'를 어떻게 부르는 거였는 지 음과 가사도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느낀다. 거리도 멀어졌다. 내 마음도 변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굉장히 소중했던 시간이기 때문에, 이후 그 상황에서 받았던 감각과 겹쳐지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향수와 함께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과거의 내가 내 안에서 살아나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무감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때 만으로 충분해.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때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함께 걸을 수 없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인연이 어느순간 좌표가 맞아 이렇게 잠시나마 함께 있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다. 난 굉장히 즐거울 때, 지금 현재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마음이 급속도로 차분해진다. 왠지 모를 상실감과 함께 꽉 찬 만족을 동시에 느낀다. 그 어떤 작은 변수 하나라도 틀어지면 만나기 어려운 인연이 지금 함께 있는 것이 굉장히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자꾸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과 거리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애닯기도 하지만, 동시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어쨌든 내가 살아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있어서 기쁘다. 간혹 느껴지는 초조함 따윈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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