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재를 찍다

캄보디아에 있는 결연아들, 랭킹 터취(LengKeang Touch)

LEEHK 2007. 7. 8. 01:07

 

1.

 

지금 있는 회사는 사회봉사 활동이 활발하다. 그것은 내가 이 회사에 느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2007년 3월 경, 사회공헌팀 덕분에 이 아이와 결연을 한 뒤, 한 달에 일정 금액이 통장에서 이 아이를 위해 빠져나간다.

회사 책상 한 켠에 '랭킹'의 사진이 있고 일하다 지칠 때마다 "저 녀석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해!" 라는 생각을 한다.

 

 

 

 

 

2.

 

결연 이후, 아이에게 편지를 한 번 보냈다. 다른 분들은 크레파스, 인형, 기타등등 선물도 잔뜩 해 주셨는데 나는 내 사진과 스티커 몇 장 보낸 것이 전부였다.

사러 갈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앞으로 자주 왕래할텐데 처음부터 무얼 보내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몽골에서 본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애들은 벌써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랭킹도 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학용품을 섣불리 보냈다가 상처를 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귀국직전 나란톨자크 시장에서 내가 가르쳤던 13살 남자아이가 물건나르며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 수업 이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 정말로 반가운 한편, 이제 그 아이는 학교에 다시 갈 수 없구나 라는 생각에 안타까웠었다.

항상 신나게 웃으며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라,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 아이는 벌써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짐을 옮기는 그 아이에게 줄 수 있었던 건 환전하기에도 애매하게 남은 돈 뿐이었다.

 

 

 

3.

 

지난 주 받은 '랭킹' 의 답장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 함께 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랭킹' 의 사진 두 장은 모두 우울하고 긴장한 굳은 얼굴 뿐이었기 때문에 아래 사진을 보자마자 "사진 바뀐 거 아냐?" 라고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응님과 희님이 동일인물이 확실하다고 판결을 내려준 뒤에야, 랭킹의 편지지 아래 흩어져 있는 내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은 건방지게도 노란 머리로 염색도 한 모양이라 더더욱 알아보기 어려웠다.

첫번째 편지에서 나를 'Hwa Nuna(화 누나)' 라고 부르라고 하고, 한글로 '랭킹' 을 쓰는 법을 가르쳐줬더니,

편지의 첫 마디는  'Hwa Nuna(화 누나)' 였고, 아라비아어보다 더 쓰기 어려운 캄보디아 글씨 사이에 선명한 한글로 '랭킹' 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4.

 

다른 아이들의 사진에는 모두 한아름 크레파스/색연필/인형 들 선물들을 안고 있는데 우리 애만 내 사진 몇 장, 스티커 몇 장,

엽서 몇 장 받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니 이거 참-_-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서 뭔가 좋은 것을 보내야겠다 고민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애들을 위한 선물을 검색해서 열심히 찾아보니 나오는 거라곤, 'mp3p, 핸드폰, 플스, DSL' 뿐이었다.

내가 그 나이의 남자애들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뭘 갖고 싶어할지 고민을 한참 하였다.

 

 

 

 

 

5.

 

문득 사진 속 랭킹의 팔이 비어 있다는 걸 깨닫자, 손목시계를 떠올랐다.

인터넷 쇼핑몰을 열심히 둘러보다, 결국 신형님께 도움을 청해서, 아래 카트라이더 시계를 골랐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이 생겼는데, 확실히 그 나이의 남자 어린이가 아직 신형님 안에 존재하는지

"요 놈이 제일 이쁘네요" 라고 하면서 잘 골라주셨다.

 

금액은 만 오 천원, 랭킹 팔목에 요 시계가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먼저 차 봤다. ^^;

 

 

사은품으로 애기 양말과, 포장도 이쁘게 해서 도착했다.

 

요렇게 ��이까지 잘 포장한 선물은 월요일에 가져다 줄 거다. 편지도 짧게 써서 보내줘야 겠다.

웃는 얼굴이 가득한 사진을 보고 정말 기뻤고, 한글로 '랭킹' 이라고 너무너무 잘 썼다고 말해 줄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