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재를 찍다

적은 내 안에.

LEEHK 2022. 3. 26. 03:54
막상 꼽아보면 주변은 선의로 가득하다.
호의와 애정의 감정적인 보상에 물리적인 기쁨도 적지 않다.


1.
아이가 오랜만에 사흘째 40도를 찍어
애닯게 미온수에 가재수건 적셔 닦아가며 챙기다
아이 상태가 호전된 뒤 바로 쓰러졌다.

오한에 고열에 두통에 시달리며 누워 있는데
아이가 주섬주섬 물그릇과 천을 가지고 온다.
엄마도 기화열로 편해졌으면 좋겠다며 똑같이 닦아준다.

내 보물.
이제 성인 남성 95 사이즈가 낙낙하니 맞는다.



2.
식사 편히 해결하라고 보내주신 모바일 상품권 금액이 커서...
과분하다 메세지 하니
“ 입도 많으니까 ㅋㅋ 밥 잘 챙겨드시고 얼른 나으세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 집에 입이 많긴 했다;;;



3.
온 가족이 시간차 확진으로 앓았는데,
정신력으로 버텨낸 신랑이 의지가 되고 정말 고마웠다.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온전히 내 상태만 신경쓰며 배려해줬다.
아이들 돌보며 나까지 돌보려고 했다.
배우자를 정말 잘 만났다. 그가 마음의 구멍을 많이 메워준다.



4.
둘째의 기관에서 활동 프로그램 재료를 집 앞까지 배달해주셨다.
요리 활동을 한 번 아이와 하고, 간식거리로 입이 즐거워졌다.
꽃꽃이 활동을 하고 나니 식탁이 생화로 화사해졌다.



5.
실단위 조직개편 취지 공지글에 뜬금없이 내가 맡은 조직이 언급되었다길래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 좀 다른 얘기지만, 건강성 리포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A조직의 리포트를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결과면 조직이 조직장 팬으로 구성된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 건강함이 조직 밖으로도 많이 퍼지길 바라며, 성과로도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당황했고, 좋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글 쓰신 분이 고마웠고, 최근에 이직한 친구들이 생각나서 아쉬웠다.



6.
15년 전 이직 후 신규입사자 교육 때부터 친해진,
지금은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생일 축하로 보내준
케이크에 배송지 입력을 늦게 했더니, 격리 기간에 받게 되었다.
딸기크레이프 홀케이크가 예쁘고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7.
격리 기간 내내 거의 매일 동생과 아버지가 전화를 주셨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내 가족, 내 편.
그들이 있어 길 안에서, 테두리 안에서 머무른다.




감정의 지난한 소진은 줄기줄기 파고들어가 캐어보면
결국 내 안에 미약하고 가시를 세운 존재가 자리해서다.
상황이나 상대에 좌우되지 않는다. 스위치는 내가 켰다.

충동을 자의로 조절할 수 없다면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자.
아무것도 안 해도 상황이 바뀌고 생각이 바뀐다. 해결된다.
내 안의 적보다 외부의 좋은 기억들에 더 중심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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