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재를 찍다

어머니와 이별.

LEEHK 2021. 8. 16. 04:26
중환자실은 하루에 한 번 한 명만 면회가 가능했다.
신랑이 말했다. 자기도 엄마 만나러 갈래?
휴가를 내고, 어머니를 뵈러 갔다. 면회 시간 20분.
의식 없이 코에 산소줄을 끼우고 누워계신 어머니 귓가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삭였다.

앞으로도 남은 가족들에게 제가 잘 할게요 어머니.
제 시어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애들이 결혼하면,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가 될게요.

추위 많이 타시는 어머니 발이 차서 문지르고 주무르며
안겼다. 안아드리고 안겼다.
이불 꼭 꼭 덮어드리고 얼굴이랑 팔이랑 다 만졌다.



자유로를 타는 순간 전화가 왔다. 임종 대기하라고.
중환자실 앞 의자에 어머니의 삼남매를 두고,
아이들 데리러 혼자 밤길을 운전해 집으로 왔다.

장례식장 짐 챙기다 눈을 붙였다 뜨니
새벽 3시 반에 어머니가 운명하셨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5시에 짐을 다 챙기고 아이들 몰아서 신발 신기는데
상심하던 큰 애가 물었다. “엄마 안 슬퍼?”

엄마가 너희들 데리고 일산에 운전해 가야 해서
지금은 슬퍼할 수가 없어. 차분히 설명해주고.
운전 도중 울컥 올라오는 것들은 삼켰다. 지금은 안 된다.



어디까지 연락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장례지도사 님을 의지하며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친지 분들을 접대하고 아이들을 챙기다 입관 시간이 됐다.


삼남매가 우선이라, 아이들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친지 분들이 아이들을 챙겨주신다고 해서
우리 어머니 마지막으로 만져보고 안아볼 수 있었다.
꽃이 가득한 관에 어머니가 누우시는 순간
복받치는 걸 누르지 않았더니 감정이 멈추지 않았다.
큰애가 와서 도닥도닥 걱정하는 얼굴이길래 말해주었다.
엄마 참으면 안 울 수 있는데 지금은 안 참고 싶어서 그런거야.




코로나라서 조문을 사양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찾아준 친구들이 같이 울어주어서 큰 위로가 되었다.
장례지도사 분과 친지 분들, 리무진과 버스의 기사님들,
선산에 타프와 제사상 준비해준 업체 분들이 도와주셔서
7월 한 낮 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일을 치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잘 먹고 할머니와 작별 인사도 씩씩하게 했다.
특히 람이는 영정사진을 들고 전 일정을 다 수행했다.
무겁고 덥고 힘들었을텐데 고맙고 기특했다.

우리 어머니께서 쌓으신 복덕으로, 참담한 가운데에도
할 일은 잘 치를 수 있도록 좋은 기운이 깃들었나보다.



어머니가 의식 있으실 때에는 대화를 자주 했는데,
너도 몸 챙기라며 코로나로 미룬 수술을 다시 잡으라 하셨다.
그리고, 예약한 수술 날이 오기 전에 의식을 잃으셨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술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강행했는데 결국 그 수술 날은 물론, 그 수술 끝내고 회복할 때까지도 떠나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마지막 순간에도 나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시고 임종하셨다.


나를, 악한 거 하나 없이 선한 것들로만 늘 채워주셨다.
며느리를 애정으로 감화시켜서 밝은 길로 인도하셨다.
우리 어머니 정말 좋은 분인데
왜 이런 좋은 분이 이렇게 힘들게 일찍 가시는걸까.

우리 어머니가 안 계신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냥 일산 집에 계시고, 바빠서 몇 주 못 가서 못 뵙는 것 같다.
전화하고 싶고, 메세지 하고 싶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간다고 이 마음이 가라앉을까.
어머니가 보고싶다. 우리 어머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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