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제대로 이별하는 것.

LEEHK 2017. 12. 25. 23:41

오랜만에 주말 출근을 했다. 장염에 걸려 밤부터 새벽까지 연신 토하며 애처롭게 우는 둘째 챙기다, 몇 시간 눈 붙인 아침. 신랑과 애들은 병원 보내고, 난장판이 된 집을 대충 치우고, 손님맞이 음식을 했다. 다행히 시댁 식구들이 와주셔서 아이들과 남편을 맡기고 나올 수 있었다.

 

역시 일은 주말에 나와야 집중이 최고로 잘 된다. 근무에 최적화 된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세팅, 그리고 혼자다. 터미널 일고여덟창 띄워놓고 휙휙 진도를 뺐다. 더 하고 가려다, 인적없는 밤중의 사무실에 이런 저런 소리들이 나면서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어, 일단락 짓고 나왔다.

 

얼마 전 새벽에 둘째가 엉엉 우는 걸 힘들게 달래다 잠이 깬 김에 식탁에 불을 켜고 앉아 종이에 수도 코드를 썼다 지웠다 하며 데이터 구조를 만들었다. 그 때 찢어 챙긴 수첩 종이를 보며 후다닥 두드리며, 실 데이터에서 나오는 예외 케이스들에 대응하며 머리를 풀가동했다. 집중해서 일하다보면 똑똑해지는 기분이 든다.

 

 

 

요즘 상당히 멍청해졌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지능지수가 나이든다고 떨어져봤자 얼마나 떨어지겠는가. 그냥 집중도의 문제다. 내가 케어해야 하는 범위가 넓어지니, 하나하나 세세히 챙기지 못하는 문제일 것이다. 현상을 파악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무얼 놓고 무얼 잡아야 하는지 늘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 후에 쓰린 마음에 너무 리소스를 써서도 안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에너지에 기력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번아웃 증후군은 지나갔다. 무기력해지려고 할 때마다 그럭저럭 며칠이면 응급처치가 가능할 정도로 마음 관리가 능숙해졌다. 가라앉아 있을 여유가 없기에, 스스로를 계속 몰아치고 있다.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꼭 해야 하는 일에 앞서서 하기도 한다. 인과보다, 마음 정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 반차를 썼다. 반차를 쓰지 않았다면 굳이 주말 출근하지 않아도 될텐데 생각했지만 칼같이 뛰어나왔다.

 

큰 아이가 만 0세부터 만 4세까지 5년간 다니던 어린이집 송년회 겸 원장선생님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재원생도 아니기에 갈 필요는 없었다. 초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접한 소식이었다. 2017년 12월에, 원은 폐원하고, 원장 선생님께서는 정년퇴임을 하신다.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여 전화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큰애는 아직도 묻는다. “그 어린이집 왜 부숴?? 안 부수면 안돼??” 재개발에 엮어 들어가, 정당하지 않은 사유가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돈의 논리에, 약자로 엮여 폐원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서글펐다. 우리 아이가 그 원에서 졸업하지 못하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복직하려면 둘째도 원에 보내야 하는데, 차량 이동해야 하는 거리의 원으로 통폐합되는 상황이라,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갈 곳을 정하고, 그 동네에서 둘째와 큰애 보낼 곳을 찾아보느라, 초조하고 걱정 가득이었다. 기존 원의 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께서는 서운해 하셨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큰애가 갈 유치원 후보지와 어린이집 후보지에 대해 같이 의논해주시고, 아이를 위한 우선순위에 대해 아낌없이 조언해주셨다. 밤에 시간 단위 통화로 상담도 해주셨다. 원을 떠나는 아이를 그렇게까지 마음쓰며 신경써주시는 분들이 또 계실까.

 

 

 

람이는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 둘째를 키워보니 더욱 느낀다. 둘째 육아는 큰애 때 난이도의 반에 반도 안 되는 것 같다. 우리 람이 아토피에 음식 알러지에, 철마다 폐렴으로 모세 기관지염으로 연례행사 입원도 했다. 수시로 밤새 열도 나고, 잠을 제대로 못 자며 회사 다녔다.

그런 민감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은 정말 보석 같은 곳이었다. 아이를 위해 특별 케어를 해주시고, 사고시 응급처치 해주시고, 그러면서도 또 보편적인 관리를 해주셨다. 아이는 밝고 자신감 있게, 규칙을 잘 지키고, 본인이 다른 친구들과 좀 다르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리고 새로운 원의 만 5세 반에 입학하며, 엄마의 태산같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첫 날부터 너무나 적응을 잘 했다. 선생님들이 “어머니~ 람이는 걱정 하지 마세요. 람이는 성격이 워낙 좋아서 쉽게

적응할 거에요. 그리고 저희가, 새로 옮기는 원이 지금 있는데보다 훨씬 좋은 곳이라고 자주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람이는 어딜가든 즐겁게 지낼 아이에요~~” 호언장담하시던 대로, 그대로, 너무나 쉽게 적응했다.

 

새로운 원의 담임 선생님께서, 람이 정말 적응 잘 한다며, 등원 첫 날 발언 중 몇 가지를 들려주셨는데, 등원 하자마자 “이거(외투) 어디다 걸어요?” 라고 말해서 생활습관 정말 잘 잡혔구나 감탄하셨다는 것과, “같이 놀자~~~~” 라며 친구들 노는 곳에 아무렇지 않게 바로 섞여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화로 전해드리니, 기존 원의 선생님 두 분다 그렇게 이야기하셨다. “어머니, 제 말이 맞죠? 람이는 어딜가든 잘 할 아이에요~~”

 

 

 

둘째 육아휴직 중, 산후 호르몬 불균형으로 심리적 신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계약에 이사에 탐색에 결정에 혼란의 극치일 때, 동아줄처럼 도와주셨던 분들께 감사하다 다시 말 하고 싶었다. 험한 뉴스에,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어린이집들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첫 번째 아이의 첫 번째 어린이집이 그 곳이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오후 네 시부터 아홉시까지 무려 다섯시간을 그 곳에 머무르며, 서서히 작별했다.정말 숨가쁘게 달린 큰 아이 영유아 보육의 시기, 주요 무대였던 그 장소에서 이제는 이방인이 되어 행사 준비를 돕고, 물건을 옮기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꽃다발과 선물을 전해드렸다. 은인같은 선생님들, 고향같은 어린이집. 내년에는 그 건물이 부숴진다.

 

엄마 마음이 센치해졌다가 처연해졌다가 하는 중에도, 람이는 이름도 반절은 기억이 안 난다는 친구들과 다섯시간 동안 쉼없이 뛰놀며 즐거워했다. 쉽게 친해지고 쿨하게 헤어지는 우리 아들은 어쩌면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아이가 자라주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에, 기특하고 만족스러웠다.

 

 

무언가를 새로 만나는 것보다, 헤어짐의 빈도가 더 많아지고 있다. 늘 조금씩 이별을 준비한다. 제대로 이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밤길을 운전해 돌아오며, 그 건물이 부서지니 추억도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아이에게, 추억은 기억에 있지 물건에 있지 않다고 답해 주었다. 이 시간을 굳이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을 내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오길 잘했다. 다행이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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