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빠르게 달리기, 남들보다 빠르게 통과하기, 최소한 뒤쳐지진 말기, 덩어리에서 떨어지지 않게 붙어있으려 애쓰며, 경쟁 사회에서 자리잡기 위해 살아왔다. 많은 걸 얻었다는 건 많은 걸 포기하고 집중했다는 뜻이다. 열심히 달려, 아이를 얻었다. 얻기 어렵고 기르기 더 어려운 그 아이를 얻기 위해 사회 기준에 맞는 길을 달렸다. 공부하고, 성적표 받고, 가까스로 합격하고, 졸업하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며 싸우고 경쟁하고 돈을 벌다가, 결혼을 하고 방황하고 임신하고 몸을 찢어 아이를 낳았다.
아이에카.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지금 워터파크 탈의실에서 둘째를 안아 재우고 있다. 신랑과 큰애는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이하고 있다. 둘째 임신 막달부터 출산 후 일 년 남짓 수영장을 참아온 큰 애가 정말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서툴게 물징구치는 둘째의 웃음에 행복해하고 있다.
학교, 혹은 회사 뒤에 이름을 붙였던 건 소속감이 기본인 사회 통념에 적응하려 애쓴 결과물이었다. 휴직을 하고 병가를 내고 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무소속인 아이 엄마가 되어 살면서 아이의 호흡에 맞추다보니 많은 것들이 참 느리다. 서둘러서 해결되는 것들은 거의 없다. 버텨내며 현재를 즐기려 애쓰며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물리치료사인 동생의 표현에 따르면 '출산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늘어난 인대의 통증'에, 깜빡하고 옷을 뒤집어 입고 나가는 정신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현실에 충실하고 있다. 습관처럼 움직이는 마음을 탓하지 않고, 다독여 다시 데리고 들어오는 노련함이 내 안에 피어나고 있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느리게 걸어가며 길가의 꽃을 살피는 시기도 있다. 고지를 쟁취해 점수 따기보다는 풍경을 보며 즐거움을 찾는다. 느리게 걷는다.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도, 꽃을 잊지 않는다.
얼마 전 본, 정말 잘 쓴 기사에서 공감하는 문장 중 하나가, 기존의 여성운동은 전통적인 엄마상과 사회인을 분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요즘은 엄마 역할과 경제활동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20대에는 여성스러움을 내 안에서 찾는 것에 어색함과 거북함을 느꼈었다. 전통적인 여성상보다는 중성적인 색을 좇으며 달려가다가, 외려 아들 둘을 낳은 뒤에서야 더 여성스러워졌다. 꽃도 리본도 포장도, 귀여운 무늬의 마스킹 테이프도 뒤늦게 좋아지고 있다. 엄마가 된 후, 여성호르몬이 더 활발히 나오는 것 같다.
지금 대통령 후보 중 한 분의 강연에서 "일과 가정의 조화는 어떻게 하셨나요?" 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 "정시퇴근해서 꼭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는 답을 받았었다. 사실 정시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밥 먹기는 참으로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이상적이다. 우리 집에서도 평일에는 엄마와 아빠가 아이와 하루 한 끼 식사도 같이 하기 어렵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다정한 엄마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역할을 다 하는 사회인이고자 한다. 빨리 달릴 수 없다.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다. 느리게 걷고 있음에도 빨리 달릴 때보다 더 부하가 높고 숨가쁘다. 더 힘들다. 가진 게 많아지면서 겁이 더 많아졌고, 할 일도 훨씬 많아졌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힘든 만큼 더 행복하다.
복직 며칠 후, 느리게 걷는 현재와 관련된 상념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