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치열함의 지겨움.

LEEHK 2014. 12. 22. 01:20

피검사를 또 해봐도 지혈 반응 속도가 기준 미달이라 혈액내과 협진을 해야 한다며 오전 일순위였던 수술 순서가 조금 밀릴거라는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한테 번갈아 들으면서 지금이라도 수술 안 한다고 하고 튈까! 튈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혈관이 약하다며 팔뚝을 계속 실패하고 결국 오른 손등에 꽂힌 두꺼운 수술용 바늘이 하루가 지나도 계속 욱씬거려 침착하기가 어려웠다. 개복수술 후기를 열심히 찾아 읽으면 읽을수록 나오는 부작용 관련 내용들, 제왕절개보다 아프다는 후기에 겁이 덜컥 나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마취 중간에 정신만 깨어나면 어떡하지, 통증을 다 느끼면 어떡하지, 배를 째는데 진짜 아플텐데 어떡하지, 역시 튈까! 수술 안한다고 할까! 고민하며 어질어질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이동식 침대가 수술실에 내려가자고 병실 앞에 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내려가며 든 생각은 아- 유서 쓰다 말았는데- 였고, 수술실 문 닫히기도 전에 수술실 내부로 급히 이동하는 침대에 실려 신랑과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일수도 있는데 뽀뽀라도 할걸-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이동 담당인 어린 청년 앞에서 그 모습을 보이는 게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오버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 잠깐만요! 를 외치진 못했다.

 

대여섯명이 주변을 에워싸고 초록색 천을 덮어주고는 환자복을 탈의시켜 주고 계속 이름과 생일, 수술 목적을 물어보았다. 지름이 2미리는 되는 것 같은 그놈의 수술용 주사바늘을 통해 마취액이 들어오는 손등과 팔뚝이 욱씬욱씬거렸다. 아파요- 하고 말하니 어느 친절한 여자분이 팔을 문질러주어 위로받는 것 같은 기분에 고마웠다. 잠시 몸이 부웅 하고 살짝 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이 느껴져 마취가 되는건가, 전신마취는 회복할 때 힘들다는데 하반신 마취를 해달라고 할걸 그랬나 생각하다 눈을 뜨니 또 한 번 부웅 하고 주변이 돌았다. 잠시 고개를 돌리니 메스껍고 어지러운 게 숙취와 같았다. 이대로 일어나면 분명히 속을 게워낼 것이 분명해 절대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 죽은듯이 다시 자야한다. 라고 생각할 무렵 주변에서 괜찮냐 물었고 보호자를 찾더니 침대가 달달거리며 수술실 밖으로 이동했다. 엘레베이터에 사람이 많아 식판 이동용 엘레베이터로 층을 이동해 병실로 와서는 여러 명이 시트 째로 들어 병실 침대에 내려놓는 충격에 절로 비명이 나왔다.

 

배는 아팠다. 피부도 내장도 다 아팠다. 그런데 아이 낳을 때 진통하는 것에 비하면 괜찮았다. 누가 침대를 치지만 않으면, 그냥 누워만 있으면 견딜만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생리통 정말 심한 날, 누군가가 손톱으로 자궁 내막을 긁는 것 같은 통증, 앉아있기도 힘들어 진통제를 삼킨 채 누워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심정과 비슷했다. 분만시 진통은 정신을 차릴 수 없고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면, 개복수술 후 통증은 짜증나는 아픔이었다. 수술 전 겁먹은 것 만큼 아프지 않구나 라는 안도와, 도대체 내 생리통은 얼마나 심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쯤이야 매달 겪는다. 하하하.

 

 

마취에서 깨어난 뒤 잠을 자지 말라고 해서 만화를 보며 시간을 버티다, 밤이 되어 잠들었다. 메스껍고 어지럽고 두통이 오는 것은 무통주사의 부작용이라는데 다행히 누워 있으니 괜찮았다. 물을 못 마시니 가재수건에 정수기 물을 흥건하게 적셔 입가와 이마에 얹어놓고 계속 잤다. 수술 부위는 많이 아팠고 시야는 어지럽고 메스꺼웠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면서 목소리도 잘 못 내며 누워서 버텼다. 신랑이 이틀 내내 휴가 쓰고 손발이 되어 돌보아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이 장기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서 힘들어도 조금씩 걸어다니라고 하셨는데, 말이 되냐 하면서 조금씩 옆으로 누워 움직이는 것도 충분히 장하다. 소변줄을 뺀 탓인지 덕인지 정기적으로 가야하는 화장실을 이 통증을 견디며 다녀오는 것 만으로도 훌륭하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수술 다음날 저녁 회진 때 들어오신 의사 선생님께서 좀 걸었나 물으시기에 걷겠다 했더니, 기어이 일으켜 세우셨다. 같이 걷자며. 배의 통증도 통증인데 숙취와 같은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병실 문을 나서기도 전에 쓰나미와 같이 몰려와 시야가 흐려졌다. 선생님이 격려해주시고 떠나시지마자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허탈했다. 어제 배를 쨌고, 수술 부위가 낫기도 전에 장기 유착되지 않으려면, 빠른 회복을 위해, 힘들어도 꾹 참고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운동을 안 해도 장기 유착 안 될 사람은 안 될거고, 운동 해도 회복 오래 걸릴 사람은 오래 걸릴거다. 개인의 노력 여하는 잘 될거란 확률을 높일 뿐이지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건, 실패했을 때 자책하지 않기 위해서다,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다. 보장되지도 않는 결과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면 참담한 결말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싫어서, 그만 하고 싶은데도 꾸역꾸역 노력해야 하는거다. 성실한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주변에 자신에 세뇌하며 말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사람 몫을 하기 위해, 그만 서고 싶을 때도, 숨가쁘게 달린다. 걷다 서다 앉다 누워버리면 뒤에서 따라오는 집채만한 파도에 잡아먹힐 수 있으니, 이미 멈출 수 없게 된거다 이 레이스는. 아 지긋지긋하다.

 

 

아파서 몸을 추스리고 쉬러 들어와서도 그 짓거리를 계속 해야 한다는 사실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 힘들 때야말로 더욱 커다란 노력을 해야만,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서글펐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수술 부위 회복을 하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이루기 위해서, 찢어지고 아픈 몸으로 재활을 해야 하는구나. 이런 게 인생이로구나. 그 치열함이 참으로 지겹다.

 

 

걸어야 한다는 현실에서 도피할 겸, 잘 자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억지로 잠을 더 자서 그런지 두통과 메스꺼움이 더욱 심해져,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장기 유착이 되는 건 너무 무서워, 걷기 위해 결국 무통주사도 빼고, 진통제 복용도 멈췄다. 진통제 부작용인 숙취같은 게 사라지면 통증만 참으면 되기에 진통제 없이 쌩으로 복도를 걷기 시작하며, 지겨운 그 치열함에 결국은 익숙해져있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인생이란 이런건가. 잠깐 쉬어가며 건강을 돌보러 들어왔더니 더 많이 노력해야만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치열함이 차라리 견디기 쉬운 것이였음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하는 건 역시나 너무 진부한 방식이지 않은가. 조금 한심하고 재미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건강은 조금 더 좋아질테니, 백프로 손해본 것만은 아니고, 이 타이밍 아니면 수술하기 더 어려웠을테니 또 나쁜 것만은 아닐테다. 배의 신경이 잘려나가 그런지 저릿저릿하고 감각이 둔탁한 복부를 어루만지며, 또 이제 어찌 살까 생각을 더듬는, 이 치열함이 익숙하면서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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