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 저런 약을 먹어서 그런지 아팠던 후유증인지 멍 하고 어지럽고 미식거리다가도 감정이 묘하게 가라앉아 있곤 한다. 둔한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무미건조한 느낌이 더욱 맞겠다. 약간 냉소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즐겁고 슬프고 기쁘고 불쾌함 모두 있는데 깊이 발전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식욕도 많이 줄었다.
물 속에 있는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베인 흐름대로 생활하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의 속도와 몸의 움직임이 모두 느리게 느껴진다. 상황에서의 판단은 비슷한데 감도가 다르다. 화가 나서 병에 걸릴 것 같은 순간들이 사라져서 나름 만족은 한다. 인생사 다 부질없고 허무한 것 같다는, 그래서 너무 치열하게 살지 말자는 생각이 기저에 깔리고 있다. 이런 저런 일정들을 숙제하듯 대하고 있다. 해야 하니까 하고 빼먹지 않고 다 끝나면 나름 뿌듯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 정도다. 물 밖에 놓고 온 건 내 삶의 독 같은 동반자였던 설레임과 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