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 927일.
1.
9시 퇴근하여 10시 귀가. 샤워 후 레고 듀플로를 가지고 노는 람이 옆에 앉다. 반가움의 눈빛 교환, 미소, 꼬옥 안기, 폭풍같은 뽀뽀 쪽쪽을 지나 차분해질 무렵 아이가 다가와 말한다.
"엄마는 꽃이야."
손을 내밀라는 몸짓, 손바닥 위에 람이가 레고 꽃 블럭을 내려놓으며 눈웃음친다.
... 이 순간 엄마는 람이의 꽃이로구나. 기억을 기록하고 싶어 사진 찍다.
며칠 전 람이 아빠가 "람아 엠버가 줗아, 진 누나가 좋아?" 라고 물었더니 람이가 대답했단다.
"엄마."
세뇌교육이 빛을 발한 듯 하다. 람이 아빠가 "너 엄마한테 교육 잘 받았구나~~" 하며 웃었단다.
2.
아빠가 부엌에서 수박 먹는 걸 보더니, 의사를 표현하다.
"람이도 수박 먹고 싶다."
안전문에 찰싹 달라붙어, 수박을 덜고 있는 장면을 주시하며 훈수 둔다.
"수박을 싹뚝싹뚝 썰어? 씨는 빼줘~ 씨 빼줘~"
... '싹뚝싹뚝'이라는 어휘는 어디서 듣고 응용하는거니! 굉장하다!
3.
레고 듀플로로 아빠가 키마를 여러 번 만들어주다. 다음에 마트 가면 키마 하나 사오자고 부부 대화하는 걸 듣더니 옆에서 끼어든다.
"키마는 여기 있잖아~ 마트 가서 아니 사도 돼~"
... 람이가 엄마 아빠 절약하게 하는구나? ㅎㅎ
4.
람이를 부를 때, "우리 애기야~ 우리 이쁜 애기야~ 엄마가 우리 애기 사랑해~" 라고 말한다. 태어나서부터 습관처럼 항상 하던 말인데, 몇 주 전부터 반응이 달라지다.
"은네~ 은네~ (응애~ 응애~)"
하며 엄마 앉은 무릎에 올라와 다리를 애기처럼 구부리고 누워, 응애 소리만 낸다. 딴에는 이제 유아랍시고 애기 흉내를 내는 것 같다. ^^
5.
며칠 전 람이 아빠가 아이 재우며 들려주었다는 이야기, 오늘 그대로 엄마에게 설명한다. 방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콕 콕 찌르며 리듬감 있게 말하다.
"나무는 저기서 코 자고 여우는 저기서 코 자고 호랑이는 저기서 코 자고."
그리고 응용한다.
"아빠는 방에서 코 자고 엄마는 방에서 코 자고 람이는 방에서 코 자고"
++
새벽 두 시, 기저귀에서 쉬야가 세서 찡찡대는 람이를 닦고 갈고 챙기고 다독이며 한 시간 여를 보내고, 잠이 깬 김에 기록한다.
몇 몇 동요는 율동과 함께 완곡이 가능하다. 대부분 일부 소절을 혼자 소화하고, 모든 노래는 함께 부르다 잠시 기다리면, 다음 가사를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물론 내 아들 답게, 음정 박자는 엉망진창이다. ㅎㅎ
최근에는 소변 가리기 성공률이 올라갔다. 새벽에 엄마 아빠 쓰러져 잠들자 혼자 거실에 나가 할머니께 "할머니 쉬야~" 라고 하고 쉬통에 볼일 보고 다시 들어와 잠든 것은 가장 모범적인 일화. 아침에 일어나서 쉬통에 쉬야하는 것은 습관이 된 듯 하다. 이것은 다 할머니와 어린이집 선생님의 공이다. 일찍 출근 해 늦게 퇴근하는 엄마는 평일에 람이 보는 시간이 몇 시간 안 된다. ㅜㅜ
걱정하던 물사마귀는 달포 만에 진화되다. 소아과에서 도려내는 시술을 5번 정도 했고, 한 번에 20개 정도를 뗀 적도 있다. ㅜㅡ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 생기는 게 없어졌다. 기존에 끈질기게 남은 것들은 람이가 긁다가 깎아냈다. ㅜㅡ 그래도 이정도에서 끝나 정말 다행이다. 아이의 문제는 노력해도 해결이 안 된다고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고 한 번 더 마음을 다잡다. 보호자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준비되는 순간,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정리가 되는 것이 많다. 어른이 할 수 있는 건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 뿐, 몸이든 마음이든 성질이든, 호전의 타이밍을 정하는 것은 아이 본인이다.
이는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이 육아를 하며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부분이자, 육아를 통해 얻은 교훈을 일상 생활에서도 적용하게 되어, 엄마가 된 후 인간적인 그릇이 커진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기도 하다. 람이를 기르며,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기다리기 정말 힘든데, 그 시간을 잘 버티면 어떻게든 아이는 성장한 모습으로 보답해 준다.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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