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새벽.

LEEHK 2013. 7. 15. 05:05

새벽녘, 불룩한 기저귀를 갈아주다, 선잠 깨어 투정부리는 아이를 다독여 간신히 재우다. 제습 해두었던 방을 닫아놓고 자는 것이 답답하여 베란다 유리문을 여니 나직한 빗소리가 저 멀리 어디에선가부터 아련히 들려온다.

 

사람 생각이 물씬 나고, 일 생각에 의욕과 답답함이 동시에 들고, 일어나 나가려다가- 더 자야할 것 같아- 생각이 꼬리를 물다- 습관처럼 무의식중에 월요일 출근하여 할 일들을 구상하게 되다. 잊기 전에 적어두려 핸드폰을 꺼내어 메모하다 온전히 잠이 깨어버린 탓에 이 글을 끄적인다.

 

나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데, 엄마 역할과 회사 일, 두 부분에서 특히 그러하다. 두 가지 부분에서 동시에 힘든 일이 터지면 정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지난 주 금요일이 그러했다. 다들 이렇게 사는거지 싶으면서도 '어디든, 어디로든,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로든!' 의 충동에 격하게 시달렸다. 한없이 가까웠던 사람이 생경하고, 다 장악하고 있다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수박 겉핥기 중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고, 허무하고 하기 다 싫고 지쳤다.

 

아이의 가장 큰 역할은 귀여움이 아니라, 추와 같은 묵직한 무게감에 있다. 날겠다고, 수영하겠다고, 숨겠다고, 도망가겠다고, 잠깐 역할을 내려놓고 쉬겠다고 충동적으로 울컥 했다가도- 이 아이를 대학 교육까지는 시켜야지-_- 하는 생각에 다독이게 된다. 판단의 기준이 나보다 내 아이라는 것,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과연 내 아이에게 적절한 엄마 노릇일까 하는 까만 고민들,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성향의 변화 등은 모두 부모라는 책임감에서 기인한다.

 

장마와 함께 시작되는 한 주, 어떤 것들은 낯설어서, 어떤 것들은 너무 잘 알아 지겨워서, 의욕이 줄어든다. 도입부가 잘 쓰여진 책은 참 드물다. 그리고 마무리까지 탄력있게 힘있게 받쳐주는 책은 더 드물다. 나는 지금 힘있게 도입을 그리고, 전개하기 전에 잠시 바닥을 치는 사인 그래프다. 장르를 바꾸고 주제를 바꾸고 갑갑한 이 모든 것들을 뒤죽박죽 뒤섞어 갈아치우고 싶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아- 주파수 대역을 따라 올라갈 시기를 의욕 없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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