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한 지 일 년이 되었다.
복직하던 날이 생각난다. 유닉스 리눅스 책과, 업무 팁을 모아 적어두는 수첩을 들고 설레이며 출근했었다.
유닉스 리눅스 책은 한 번도 안 열어봤을 만큼, 손가락에 익어 있는 온갖 명령어와 비밀번호들이 행복했다.
밖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 점심시간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차를 마신다는 것,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
아이 엄마에서 내 자신의 이름을 찾은 날, 자유로움과 두근거림, 살아있는 느낌을 만끽했다.
아이는 자주 아팠고 입원도 했다. 열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밤을 새면서- 아침에 가지 말라고 매달리는-
자주 있지도 않았던 그 며칠의 힘들었던 날들에는, 내가 내 욕심 차리려고 회사 생활을 한다는 것에
죄책감과 미안함과 불안함에, 서러움이 북받쳐 오를 때도 있었다.
인수인계 해놓고 갔던 업무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개편 이슈가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
길고 긴 터널을 지나 간신히 돌아왔는데, "언제 왔어? 금방 왔네?" 라고 반색하던 카운터 파트 분들.
회사 옮길 생각 없냐고, 부서 옮길 생각 없냐고, 여러 번 다가왔던 유혹적인 제안들,
15개월 육아휴직을 했어도, 10년 간 성실히 해온 나의 커리어는 여전히 인정받고 있었다.
주변을 도우며 업무 조율을 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즐거움, 강의할 기회가 지속적으로 생기는 것,
데이터마이닝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었고 짜릿한 감각이었지라는 느낌.
공부를 계속 해야만 할 수 있다는 일, 그리고 공부를 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는 것,
각자 다른 성향을 가진 팀 사람들을 아우르며 서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볼 때의 뿌듯함,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 즐겁다. 직장인으로서 이보다 더 이상적인 상황이 있을까.
흔들렸던 상황들에서 깊은 고민과 숙고를 하여 중심을 잘 잡아, 현재 자리에서 기여할 수 있는 역할과
누릴 수 있는 것들, 가질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서 일 년을 잘 보냈기에, 지금 현재 즐겁고 기분 좋을 수 있다.
어딜 가도 잘했을 거란 이야기는, 여기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답답한 것이 아니다.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몇 달 간의 방황도 있었다.
경험이 많기에 주변을 도울 수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상황이 아름답다.
우울증과 눈물과 힘듦이, 보람과 행복과 즐거움을 초과해서 무너져내리듯 압박해왔던 육아휴직 기간에
정말 돌아가고 싶었던, 사회인으로 다시 살고 있어서 정말 기쁘고 고맙고 행복하다.
물론 현실이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와 답답함이 기분 좋음 사이 사이 섞여 들어와 마음을 조여올 때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든 있을 수 밖에 없는, 갈림길에서 한 쪽을 선택할 때 따라올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이다.
4월 초에 제주에서 만났던 벚꽃을, 4월 말 남산에서도 만났다.
5월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선명한 빛깔 철쭉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하지만 어떠하랴.
모든 것은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즐겁고 설레이고 행복하다는 것이고, 아슬아슬한 균형이나마 유지하고 있다는 것-
복직 후 일 년 동안, 가열차게 살았고, 앞으로 더 가열차게 살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
어찌되었건, 가지고 있는 것은 놓지 않으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발전하고자 고민하고 있다는 것-
미안하고 무서울 때도 많지만, 고맙고 행복할 때가 더 많다.
상투적인 멘트일 지 모르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더 열심히 살고 더 행복하고 싶다.
복직 후 일 년, 스스로를 칭찬하고 응원하고, 상상 속의 그 날이 왔음을 기념하고 싶어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