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아슬아슬한 신뢰.

LEEHK 2013. 4. 9. 21:31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긴장도 안 되고, 딴 생각도 하고, 사방 경계가 소홀할 때도 있고, 생각 없이 움직이다 다른 차를 위협하게 되어 빵빵 경적도 듣고, 앞뒤 안 보고 끼어드는 다른 차에 하이빔을 쏘기도 한다. 손 가는대로 대충 보지 않고 움직이다, 주차 중에 차도 두어번 긁었다. 다행히 남의 차가 아닌 기둥이랑. :)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아무리 집중해도, 다른 이들이 딴짓하면 사고가 난다. 그래도 별 일 없겠지 무사태평하고,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는 것은 일면식 없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이일 뿐, 잠깐 같은 길을 가다 흩어질 짧은 인연일 뿐, 그와 나는 같은 일- 운전을 한다는 것과, 같은 목적- 목적지까지 잘 도착하겠다는 공통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 다수인 남을 믿을 수 있을까? 그들은 어찌 나를 믿어줄까. 우리는 어째서 믿을 수 없는 타인과의 차간거리를 지키며 안전지대에 있지 않고, 틈을 노려 끼어들며 위험을 감수할까.

 

 

 

지금 믿는 누군가 역시, 평생 함께할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다가 찰나의 타이밍이 맞아 잠시 동행할 뿐이다. 내가 내 차선을 벗어나거나 그가 잠시 그의 선을 벗어나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어찌 나 아닌 절대다수인 타인을 이리 신뢰하고 곁을 내어줄 수 있는걸까. 운전을 즐기는 이들은 대부분 스릴을 즐기고 긴장감을 즐거워한다. 단순히 그런 게임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기대하고 옆에 두고 싶어하는 외로움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차 한 대 없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때, 같은 차와 부딪칠 사고의 위험이 없는 안전함에도 오히려 불안하고, 다른 차가 한 대라도 보이면 길을 맞게 찾아가고 있구나 안심하는 마음일까. 내가 다치고 싶지 않듯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역지사지인가.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있어야만 안심하는 군중심리인가.

 

 

 

밤길을 운전하다보면, 그저 우리는 흐르는 별빛 같다는 생각이, 돌과 돌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 > 상념의 문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직 1주년.  (0) 2013.05.07
완벽한 건 없다.   (0) 2013.04.28
몸이 부서져버릴 것 같다.   (0) 2013.03.23
워킹맘의 부채의식.   (0) 2013.03.17
귀걸이.   (0) 201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