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나, 미혼일 때는 그러하지 않았다. 일 하고 싶을 때는 일 하고, 쉬고 싶을 때는 쉬었다. 놀고 싶을 때는 놀았고,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는 만났다. 내 행동은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되었고, 모든 결과는 스스로가 감내하면 되었다.
지난 주 평일, 람이가 물 내리는 소리에 놀라 기겁했을 때 람이 아빠가 마침 도깨비 소리를 하여 아이가 기절할듯이 울고 겁먹은 채 잠들었다는 말을 다음 날 전해들었다. 괜찮아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는 수시로 변하니까 괜찮겠지. 당시 나는 일이 생각대로 진행되는 것에 흥이 나 있었다. 일정이 빡빡해서 야근을 한다지만, 사실 매우 즐거웠다. 일을 하는 짜릿함을 오랫만에 느꼈다. 서버 몇 대에 작업을 병렬적으로 돌리며 머리 속에 쓰레드를 서너개 돌리며 뇌를 풀가동 한 뒤의 기분 좋은 피로감.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회사 생활이 즐거워 행복해 둥둥 떠 다녔다.
어린이집 진급한 뒤에, 새로 들어온 원아들이 교실에 갑자기 늘어나고, 하루는 팔을 물려 왔어도, 우리 람이만은 씩씩하게 잘 지낸다는 칭찬을 들으며 반은 우쭐했는지도 모른다. 대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내 아들은 어딜 가든 잘 먹고 잘 지낸다는 고슴도치 엄마의 프라이드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더욱 내 자신의 욕구에 충실했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일적인 쾌감에 잔뜩 취해 행복하다 사랑한다 외쳐댔었다.
집에 와 보니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가 와 있었다. 통화하려 했으나 안되어 편지를 쓴다고. 적응 기간의 신입 원아들이 교실에서 울고 하는 것에 재원생 원아들이 스트레스 받아 이런 저런 행동들을 하였는데, 우리 람이만은 의연하여 칭찬을 많이 해 주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환경이 변한 것이 스트레스이긴 했는지 그것이 소리에 대한 민감함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아침에 등원할 때 조금 울기는 했지만 다독이면 잘 놀았으니, 걱정 마시고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주며 기다리자는- 감사하고 또 감사한 편지였다.
그러나 그 날을 기점으로 기분이 곤두박질 쳤다. 나는 얼마나 오만하였는가. 그저 내 생활에 취해 아이가 민감해지는 시기에 늦게 들어오거나, 자고 난 뒤 들어오는 불량 엄마 짓거리를 하였던가. 나는 열심히 살았고, 즐겁고 행복했는데, 그것이 아이에 대한 배려가 줄어드는 전제 하에서 생활했던 것이니 도대체 이놈의 워킹맘 생활의 균형은 또 어디다 무게중심을 세팅해야 하는 것인가.
예전부터 제일 싫어하는 일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 잘못하지 않았으나 -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미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그런데 이건- 아이가 물과 화장실에 대한 공포감이 생긴 것은- 어린이집에 일시적으로 가기 싫어하는 것은- 그저 한없이 미안하고 죄인이 된 기분만 든다. 차라리 화를 내고 짜증을 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워킹맘은 그저 항상 미안하다. 설사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해도.
친정 어머니와 신랑은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쓰면 애기 엄마가 회사 생활 못 한다고. 아이는 잘 지내고 있고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걱정할 거리가 없다고 했다. 그저 자라면서 겪는 일인데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 뿐이라고 펄쩍 뛰며 내 우울함을 어이없어 하셨다. 특히 할머니가 이렇게 완벽하게 챙겨주고 있는데- 엄마 출장으로 며칠 없어도 엄마 안 찾는 애한테 - 정서적인 부족함이란 있을 수 없다고 걱정 말라는 단호함에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가정-회사생활-그리고 나 자신- 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균형점에 대해서 말이다. 그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한 잔 하러 가자고 말 하고 싶었다. 조금 더 즐겁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진 것들을 지켜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면, 충동보다는 금욕이 현명함을 세뇌하듯 자꾸 되뇌어야 한다. 남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줄타기 하고 있음을 감사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존중하며 지켜주기 위해서는 내가 더욱 잘 해야 한다. 더이상 미안한 감정에 짓눌려 자기혐오로 빠져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일을 열심히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ㅎㅎ 아이의 성장에 따라 얼마나 많은 고비 고비가 있을텐데- 그 때마다 미안해하며 우울해하는 엄마보다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본인 인생을 살아가기에 서운해도 이해할 수 있는- 존경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싶다. 그러려면 이런 워킹맘의 부채의식 따위 잘 갈무리해 치워두고- 마음 정리를 잘 하기 위해. 또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살아가야지.
심란했던 주말의 끝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