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멀어 대중교통으로 왕복 세 시간 정도를 다니다보니 몸도 마음도 축나는 것 같아 차를 가지고 출퇴근한 지 달포가 지났다.
통근 시간이 반 정도로 단축되었고, 출퇴근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죽이는 일도 없어졌다. 차 많은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를 달리며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준비하는 사유의 시간이 늘었다. 그리고 도로에서 생기는 일들로 몇 가지 깨달음도 얻었다.
간혹 운전할 때는 운전이 즐거웠다, 게임처럼, 차량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쏙쏙 빠져나가며 브레이크 밟지 않고 엑셀 만으로 주행하는 즐거움도 모두 긴장감 속에 흥겨운 유희였다.
그러나 운전이 생활이 되면서 운전이 지겨워졌다. 습관 같은 주행일 뿐이지, 운전할 기회가 생기면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다. 매일 1.5시간씩 운전하니, 한 달에 평일만 30시간을 운전하니 그냥 굳이 더 하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차 많은 도로에서 보면, 그거 조금 빨리 가겠다고 바득바득 이 차선 저 차선 끼어들며 뛰어다니는 중생들이 보인다. 그래봤자 대부분 막히는 지점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90%다. 아등바등 새치기해봤자 맘 편히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이들을 앞지르기는 커녕 외려 뒤쳐지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 인생이다.
조금 편하게 살자고 수작 부리며 잔머리 열심히 굴려도 이득 없이 욕만 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차라리 효율적인 동선을 고민하며 정해진 길을 꾸준히 달리는 게 결과적으로 더 빨리 도착하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지향해야 하는 삶의 방향이다.
간혹 실수하여 가야하는 차선을 놓친 경우 어쩔 수 없이 끼어들어야 하는데, 바득바득 안 비켜주겠다고 쌩하니 달려붙는 차들이 있다. 너희 도착시간에 차 한 두 대 껴줬다고 치명적인 문제라도 생기냐 혀를 차며 내 인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끼어드는 모든 차를 족족 받아주는 것 역시 병신짓이지만, 굳이 굿 타이밍으로 치고 들어온 차 한 대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고 전투 자세로 운전하는 것도 지나치다. 어차피 나도 언젠가는 끼어들고 언젠가는 양보하게 되는 것, 서로 적당히 주고 받은 상생의 길이 되어야 한다.
길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굳이 파닥거리며 다니거나, 내 자리를 지키려고 안달복달하는 차들은 빤히 보인다. "곧 애기가 태어나나 보지.", 혹은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견딜 수 없나봐" 하며 웃어넘길 때도 있는데 간혹 너무 심할 때는 "병신. 미쳤나봐." 하며 혀를 차게 된다.
흐름이 깨지는 순간 나는 것이 사고다. 한 달 동안 다섯 대 추돌사고 현장을 목격한 것이 두 번, 사소한 사고들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보게 된다. 사고 없는 도로를 보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사고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사고 확률이 낮다지만, 확률은 한 두 번일 때만 의미 있는 것, 반복적인 사건이 생기면 언젠가는 닥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사고를 유발하는- 도로의 흐름을 깨는 운전 습관을 가졌다면 말이다.
동서양 철학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도가의 사상이다. 모든 것은 난 그대로 두는 것, 세상의 기운을 따르고 동화되는 것, 내 자신으로 침잠하며 깊이 사유하는 것. 도로의 흐름을 부드럽게 따라가며 사고 없이 위험하지 않게, 적당히 양보하고 적당히 끼어들고, 적당히 달리고, 적당히 차간거리 유지하고- 시냇물의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향해 흘러간다.
그렇게 운전하고 그렇게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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