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보물과 만나다

람이 535일 - 단유의 인정.

LEEHK 2012. 7. 26. 09:06

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젖몸살은 아니었다. 가슴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훌쩍 웃도는데도 긴팔 후드잠바를 입고 나갈 정도로 몸이 덜덜 떨렸다. 에어컨 아래에서는 온 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38도를 확인하고 타이레놀을 먹고 출근했다. 하반기에 람이가 아플 때 간호해주기 위해 휴가를 아껴야했고, 그깟 열 금방 떨어지겠지 싶었다. 오늘까지 하겠다고 내 스스로 정해서 공유한 일정이 몇 개 있어 해야만 했다. 점심시간에 아씨방에서 눈을 붙이니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었다가 저녁 5시를 넘어가니 농담을 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서둘러 정리하고 퇴근하는데, 집까지는 또 얼마나 먼지, 산 넘고 물 건너 두 시간을 갔다. 내리고 싶지만 내리지 못하는 버스에서 온 몸이 아프고 춥고 어지럽고 미식거려서 울었다. 집에 오니 39도가 넘었다. 입덧할 때, 임신 기간 중 자주 이랬었다는 기억이 났다. 편도 삼십 분도 안 걸리는 양재동 살던 시절에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편도 한시간 사십분이 되니 정말 숨이 찼다. 도저히 다음 날 출근을 못 할 것 같아 피같은 휴가를 쓰고 병원에 갔다.

 

 

급성 후두염. 주사 맞고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의사가 물었다. "아직도 모유수유 하세요?" 올해 초 아팠을 때, 모유수유 중이라고 타이레놀만 처방 받고 나왔던 그 병원이었던가. "일주일 전 쯤부터 안 먹이긴 하는데요." 나는 단유한 게 아니라, 람이가 언제까지 젖을 안 찾나 신기해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항생제 써야 하구요. 주사도 맞으셔야해요. 애기 젖은 먹이면 안되구요." 고개를 끄덕인 것은 몸이 너무 아파서 일단 살고보자는 의지였을까. 아니면 단유의 인정인가.

 

 

 

신랑과 부모님은 그냥 이참에 젖을 끊으라 하신다. 거진 18개월 먹였으면 잘 먹였다고. 이제 너도 우유 계란 먹고 살아야지. 사실 술은 많이 그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허전하고 서운하다. 단유하게 되었을 때 그리워지면 보려고 수유하는 장면의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어두었다. 그럼 뭐하나. 오물오물 거리는, 허겁지겁 다가오는 람이의 입술 모양이 생생한데, 그게 이제 모두 과거라니. 단유 계획을 잡고 단유한 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젖을 안 찾게 되어 그만 먹이게 되었다. 람이의 컨디션에 맞춘 것이다. 아기가 안 찾게 되어 그만 먹여요.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인가. 하지만 엄마 마음의 준비는 배제되어있다. 아직 우유 계란 못 먹겠다. 먹고 싶지가 않다. 후두염 치료하고 나면 다시 물려볼까? 이런 기분이 든다. 그러면 안 되겠지? 모유를 그만 먹이고 되면 영양 대체품을 챙겨야 할 것 같아 잔멸치와 두유를 급히 주문했다. 그럼에도 허전하다. 아이를 우유와 계란을 먹지 못하는 세계에 남겨두고 나 혼자 빠져나와 미안하다.

 

 

 

 

젖이 없어진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성남 집에서 엄마의 순위는 4번이 되었다. 1번 할머니, 2번 아빠, 3번 할아버지, 4번 엄마. 독보적인 1위로 달리던 시절이 있기에 5번 삼촌보다는 낫다고 기뻐하기에는 -_-;;;;;;;; 상황이 재미있다. 아빠를 안고 "아빠 이쁘다~ 아유~ 아빠 사랑해~" 하며 쓰다듬어주면, 질투의 대마왕이 울먹이며 소리지르며 엄마를 뜯어내고 아빠의 품에 안겨 엄마를 경계의 눈으로 쳐다본다. 야!! 일주일만에 잊었는가 모르겠지만 내가 젖을 일 년 반이나 먹여 널 키운 니네 엄마야!!! 그런 거 다 소용없다. 자기 안 혼내고 많이 안고 돌아다니고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이 최고란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