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일방적인 관계의 한계.

LEEHK 2010. 10. 11. 01:43

 

 오늘 아고라 이야기 메인에 피쳐링 된 부부싸움 관련된 글이 하나 있는데,

 읽고 나서 내내 심란했다. 온갖 리플들을 다 읽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97891


 

 내용인 즉슨 -

 

 부인이 외출한 사이 본가 부모님이 집에 오셔서 음식을 시켜 먹고

 과일을 먹으려고 시어머니가 냉장고를 열어보시더니

 처가 부모님이 직접 짜서 보내신 참기름 네 병을 발견하시고

 연신 고숩다 말씀하셔서, 남편이 2병을 부모님께 드리고

 역시 처가 부모님이 직접 만들어 보내신 깨와 깨소금도 덜어드렸다.

 a. 외출에서 돌아온 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

 시부모님은 항상 놀러다니시고 이런 거 하나도 안 보내시는데

 시력도 안 좋은 친정 부모님이 3시간이나 운전해 시골에 가서

 깨를 털고 볶아서 직접 짜서 보내신 귀한 걸 상의도 없이 시댁에 드렸다고,

 b. 그 말에 열받은 신랑이 받아치길, 본가 부모님은 노년을 즐겁게 보내고

 싶어하시는 분들이고, 장인장모님은 자식들 주는 걸 낙으로 삼으시는

 분들인데, 그걸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깟 참기름 두 병

 시댁에 드린 게 그렇게 싫으면 내가 가서 도로 찾아오면 되냐고.

 

 전형적인 부부싸움의 상황이다.

 상대방의 부모님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가 첫번째요.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함을 탓하기만 하는 게 두번째다.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기가 어려워 신랑에게도 글을 보여줬다.

 신랑님 曰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매번 그랬나보네. 오죽하면 며느리가 그랬을까."

 

 

 그리고 읽었던 리플들 중에서 인상깊은 구절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1. 아내에게 말을 할 때, "그 참기름 두 병 드렸다." 로 통보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처가댁에서 보내신 맛있는 참기름이 너무 좋아 자랑하고 싶어 드렸다.

    미안하다. 본가 부모님께서도 정말 맛있다고 고맙다고 답례품으로 뭘 보내셨다.

    하고 정리하는 게 최선.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2. 며느리 없는 집 냉장고를 열어 참기름 맛보고 줄 때까지 계속 고숩다 말하는

    시어머니와, 장인장모님 고생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편이라니..

    평소에 어땠을 지 상상이 간다.

 3. 어떤 사람이 고생하는 걸 좋아하냐, 모든 사람은 노는 것을 좋아한다.

 4. 그깟 참기름 두 병이라니! 장인어른 장모님의 정성이고 마음이다.

    슈퍼에서 산 공장표 참기름 두 병 드렸다고 아내가 그랬을까?

 뭐 이런 것들 블라블라~

 

 

 

 내 입장을 정리하자면-

 

 부모님과 자식간이든, 형제간이든, 더더욱 사돈간이라면

 물자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서는 절대로 안 된다.

 평생 주기만 하는 걸 좋아라 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전화와 표정 한 마디라도 보상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마르지 않는 샘은 없다.

 



 1) 친정 아버지와 관련된 경험담.


 친정 아버지는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는 통이 큰 분이다.

 집안의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아도, 친척에게- 친구에게 쪼잔하게

 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항상 베풀고 싶어하시는 분이다. 

 집에 대출이-_-끼어 있어도, 형제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으셔서

 실제 우리 가족은 억울하고 짜증나는 상황도 많이 있었다.

 경제적 상황이 넉넉하지 않아 애들 학원도 T_T 못 보내고 있는데

 아까워하지 않고 돈을 쓰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들은 우리집이 엄청 부자인 줄 알고,

 아버지가 계산하는 걸 점점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어 포기하게 되었던 내가 20대 초반 즈음,

 모 친척분이 이사하는 날, 보탬이 되라고 50만원을 보내셨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한 날, 그 쪽에서는 3만원이 돌아왔다. ^^

 20만원도, 10만원도 아닌 3만원이라니, 사람이라면 그래선 안된다며

 평생 살아오신 방향에 회의를 느끼고 확 돌아서신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조카들 결혼할 때 축의금 쯤은 거하게 해주시려던 분이,

 왜 자기 부모도 아닌데 냉장고를 사달라고 하냐고 어이없어 하시게 되었으니. ㅎㅎ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참으로 통쾌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한 턱- 쏘는 병은 친구분에게 옮아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버지가 주는 만큼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분이다.

 아버지가 그 분께 어떤 선물을 보내고, 그 분 아들들 결혼식에

 축의금을 거금으로 보내도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만큼 내 결혼식에 축의금으로 돌아왔고,

 아버지가 보낸 만큼 물질적인 선물로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칫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되셨을지도 모르는

 아버지 만년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모 친척은, 재화가 있으면 핏줄끼리 나눠쓰지 왜 남인 친구에게 주냐고

 불만을 토하기도 한다던데, 참으로 어이없다. -_-

 그러게 20년 넘는 세월 동안 왜 받기만 하셔서 호인인 아버지마저 돌아서게 하셨냐는거지.

 

 

 2) 친정부모님과 시댁부모님들의 관계가 좋은 비결. 


 결혼을 매우 잘 했다고 생각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도 같은 맥락에 있다.

 울 아버지 어머니 사돈댁에 이것저것 부랴부랴 보내는 것을 좋아하신다.

 결혼 준비할 때나 초기에는, 우리 딸이 가서 사랑받으라는 마음에서

 형식적인 물품을 다 챙겨주신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즐겁게 공유하신다.

 사위가 워낙 이쁘게 잘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시부모님께서도 그만큼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만큼' 이란 금적적인 가치의 동일함이 아니라,

 양가에서 오고가는 따뜻한 마음씨가 같다는 의미다.

 

 명절이 되면 온갖 지방을 자주 다니시는 아버지께서, 산지에서 직접 사오신

 한우라던지, 송이버섯이라던지, 잣, 과실 류 등을 시댁에 가져가라고 챙겨주신다.

 그것을 들고 시댁에 가면, 시부모님께서는

 "사돈어른 뭘 이런 걸 다 챙겨 보내셨니, 이거 고맙고 죄송해서 어쩐다니."

 라며 일단 진심으로 좋아하고 고마워하시며 며느리 기를 살려주신다.

 우리 아들이 처가댁에서 사랑받고 있구나 라며 뿌듯해하시면서도

 사돈댁의 정성을 마음으로 받으셨다는 것이 표정과 말투에서 다 드러난다.

 

 그리고 친정으로 갈 즈음이 되면, 화장품 세트, 건강식품, 홍삼류 등을

 예쁘게 포장하여 담은 쇼핑백을 건네주신다.

 "별 거 아니지만 전해드려라. 매번 받기만 해서 약소하게나마 준비했다."

 사돈이 보낸 물건은 높이 쳐서 받으시고, 본인이 보내시는 물건은

 약소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겸손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친정 부모님 역시, 사돈댁에서 보낸 물건을 진심으로 기껍게 받으신다.

 "우리가 보내서 괜히 부담드렸나보다. 다음에는 드리지 말아야겠다."

 라며 - 어차피 매년 매 명절마다 챙기시면서 - 빈말을 하신다.

 특히 이번에 사위를 가장 기쁘게 만든 것은 친정 부모님의 언쟁이었다.

 "사돈댁에서 보내신 홍삼 다 내 차에 싣고 다니면서 먹어야겠다 맛있네."

 "왜 당신만 먹어? 나도 홍삼 먹을 줄 알아, 반만 가져가!"

 본가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홍삼 선물을 처가 부모님께서

 서로 욕심내시며 귀하게 여기는 상황. 그 어떤 사위라도 행복할 거다.

 



 > 결론. 

 

 이건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연인- 그 어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돌려줄 줄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주고 싶어하는 병신은 없다.

 

 제발 현명하게 대처하여, 호의적인 사람이 냉정하게 돌아서게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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