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타인이 대신해줄 수 있는 부분과 대신해줄 수 없는 부분으로 나뉜다.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 영예롭고 아름다운 순간은 남에게 양보할 수도 있고, 함께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혼자 해쳐나가야만 하는 것은 괴로움, 슬픔, 고난, 억울함 등이다.
문제는 단 한명의 잘못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병폐와 사회적인 경쟁 때문에 발생한다.
미운 놈을 나쁜 놈이라고 욕해도 해결되지 않으며, 혼자만의 힘으로 빠른 시일 내에 풀어낼 수도 없다.
억울하고 답답해도 해답은 없다. 오로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잘 된다는 보장 없는 끊임없는 노력 뿐이다.
평소에는 꾹 꾹 눌러 참아도, 어느 순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기가 되어 뻥 터지는 날이 온다.
폭음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붙잡고 답 없는 하소연을 할 수도 있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만 더 힘들어지더라도,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알기에, 보았기에, 너무나 괴로울 그 마음을 감히 짐작한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가장으로서의 경제생활에서의 힘듦, 어려움, 무게감을 되뇌이시던 때가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도와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친인을 괴롭게 한 상대에 대한 크나큰 분노 때문이었다.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지만, 실제로 그들만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치면서 단단해져야만 험한 세상의 쳇바퀴에 짓눌리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견디지도 못할 술을 마시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속을 다 게워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저 사람을 보며
아무리 마음을 달래봐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게, 명쾌한 해결책을 줄 수 없는 게 너무 속상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집에 있어. 내가 돈 벌어올게 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단순한 내 감정의 소비일 뿐, 그에게 도움이 되는 해결책이 아니므로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가 느끼는 삶의 무게와 내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질량도 다르고 종류도 다르다.
섣불리 아는 척 하여 자칫 짜증을 내게 되진 않을 지 두렵다.
때로는 함께 맞서 싸우는 것이 반려자의 기본 덕목이겠지만, 때로는 조용히 그 옆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더 많이 마시지 않고 집에 들어와줘서 고맙고 조용히 잠들어줘서 고맙다.
부디 슬기롭게 이겨내어 몸과 마음이 건강하여, 근심없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