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식이 귀찮았다. 결혼과 관계된 대부분의 이벤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 새 식구를 맞아들이고 인사하는데,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몇십만원도 아니고 몇백만원이 왔다갔다하는데, 그 돈의 상당 부분이 결혼 관련 업체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나와 신랑의 가족들이 오붓하게 만나 인사하고 사랑하면 되지, 굳이 '남' 들을 끌어들여 커다랗게 일을 벌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해 돈 벌고, 그 돈을 주말에 열심히 쓴다. 푹 쉬지도 못하면서!!
결혼식은 부모님의 행사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싫고 귀찮아도, 부모님의 행사라면 기꺼이 해드릴 수 있다. 부모님의 미소와 뿌듯한 표정 하나면 내 귀찮음을 상쇄할만한 기쁨이 생겨났다.
웨딩촬영도 그랬다. 사진이 찍고 싶으면, 예쁘게 화장하고 렌즈끼고 경복궁에 출사 나가면 되는것을, 굳이 몇 백만원을 들여 두꺼운 화장에 어색한 올백머리를 하고 스튜디오에서 찍는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이 충분히 마음에 드는데,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몸매 관리를 하라는 말을 듣는 것이 때론 짜증이 났다. "왜 안하려고 하냐." 는 주변의 성화에 결국 찍기로 했는데, 막상 촬영 당일은 즐거웠다. 친구들이 온 다음부터 즐거워졌다. 메이크업샵에 도착해서 디카를 꺼냈는데 베터리가 없었던-_- 그 날의 홍일점 보영이나, 오자마자 "배에 힘줘라!" 라고 소리친 주현이나, 흑백필름 컬러필름 디카 다 가지고 와서 사진 찍어준 성열이, 그리고 그 둘이 말했던 "화경이 본 8년 중 오늘이 제일 이쁘다" 라는 말. 다 끝날 때 와서 촬영도 못 보고 와인사달라고 졸라서 엄청 구박받다 결국 와인 마신 준모, 그리고 우리 사진 찍어준다는 핑계로 전날이 DSRL을 구입한 보용오빠. 내가 촬영을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좀 더 많은 여자친구들을 부르고 미리부터 약속을 잡았겠지만, 나는 촬영이 참으로 귀찮았다.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다가 예물 고르는 것을 도와준 디자이너 고선생님과 찍사가 필요할 것 같아 생각난 성열이에게 촬영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전화한 게 다였다. (Female Friend의 웨딩촬영을 따라오는 Male Friend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ㅋ) 허리가 지끈거리고 계속 미소짓느라 얼굴이 굳어가도, 친구들 눈과 마주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솟아났다. 아-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오늘 함이 들어왔다. 가족과 예비 신랑이 단란하게 식사 하면서, 예비 시댁에서 챙겨주신 여러 물건들을 풀어보며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징어 가면을 쓴 신랑친구와 그 옆에서 호객행위하는 신부친구들의 행사는 정말 하기 싫었다. 아버지 친구분과 친척을 부르신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왕래하는 앞집 가족을 부르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옛날 잔치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불러앉혀 먹였다." 라는 아버지의 이상은 이해하지만,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함 들어오기 두 시간 전, 한창 바쁜 와중에 시루떡이 도착하고 집안 분위기는 들뜨기 시작했다. 이왕 이럴거 친구들이라도 떠들썩하게 부를걸 그랬나, 결혼식은 부모님의 행사로 생각하기로 했었는데, 고집부리지 말고 그 뜻에 따라 드릴걸 그랬나, 미안함과 후회와 망설임이 섞여들어가 감정이 혼란스러워졌다.
함 들어오기 삼심분 전, 어머니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셨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는 "애들이 주례를 안세운다네, 나한테 성혼선언도 하고 다하래 요즘 애들은 참 이상해. 허허허.." 하며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커다란 교자상 세 개에 음식이 한가득 차려졌다.
늦은 여섯 시 반, 함을 양손에 든 복복이 바가지를 발로 내리찍었다. 어머니가 모란장에서 구해오신 식물성 바가지는 산산조각났고, 열댓명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냉수와 시루떡이 놓인 상 앞에서 절을 올린 복복에게 아버지는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등을 감싸안아주셨다. 딸의 남자친구를 항상 경계했던 분에게 처음 받는 따뜻함이라 복복은 크게 감격했다. 예비신랑은 어른들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예의바르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예비신부는 내일 드레스 고르러 가는 것은 생각도 안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남동생은 밥도 안 먹고 음식 심부름만 계속 했다. 예쁘게 포장된 함에는 예상보다 물건이 많이 들어있었고, 커다란 헤라 Wedding Set에는 여성분들의 감탄이 터져나왔다. 피부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수분마스크라도 하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귀찮아서 구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함 안에서 수분마스크를 발견하고는 기분이 급상승했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에게까지 선물을 챙겨주신 시댁 어른들의 배려에 감사했다.
늦은 아홉시, "내가 진짜 힘들게 허락한거야, 알지?" 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예비신랑은 항상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대답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그만 드시라고 잔소리를 했다.
늦은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혼자 설겆이를 했다. 손이 퉁퉁 불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결혼 관련된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른들 앞에서는 전혀 취하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던 복복은 거실 소파에 기절해 있었다. 친구분을 배웅하고 돌아오신 부모님은 예비 사위가 써 온 편지를 방에 들어가 읽으셨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려고 시도하셨고, 아버지는 사생활 침해라며 방어하셨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부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도, 결국은 즐거운 하루였다. 눈 뜨면 결혼식 다음날이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왔었지만, 이런 가족 행사들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시댁에 폐백을 드린다면, 친정에는 함을 가져오는 것인가 보다. 친정에 함이 들어오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웠던 것을 보면, 폐백 드리는 것도 할만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즐거워도 귀찮다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늘 즐겁긴 했지만, 내가 부모님 입장이라면 잔치를 벌이지 않고 단촐하게 치렀을 것이다. 가족 행사에 열댓명을 불러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부모님 세대가 마지막일 것이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내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처럼 나는 내 아이에게 해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 글이 쓰고 싶어졌다. 부모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세대로서, 이 기억을 기록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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