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다녀왔다.
월급의 2% 정도 기부하고, 간혹 추가 기부금 받을 때 조금 더 내고, 사회공헌 행사 있을 때 자원봉사 몇 번 했을 뿐인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었다. 도와주러, 라는 핑계로 다녀왔는데, 더 많은 것을 받고 돌아왔다.
1. 환영행사.
500m가량 마을 어귀부터 학교까지, 빼곡히 아이들이 서서는 꽃을 선물해 주었다. 꽃집에서 산 꽃이 아니라, 길에서 꺾어다 직접 만든 꽃목걸이를 여러개 목에 걸고, 한아름 가득히 더이상 받지도 못할 지경이 될 때까지 꽃다발을 받았다. 난생 처음 받는 꽃들의 향연, 하얀색 티셔츠에 붉고 푸른 물이 들어도 마냥 기뻤다.
35도를 넘는 습기찬 날씨, 천막 아래 있어도 땀이 줄줄줄 흐른다. 건너편 건물 옥상에는 고학년 아이들이 빼곡히 서서 우리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저 건물을 짓는 데 내가 일조했다 생각하니 조금 뿌듯했다.
한 아이가 앞에 나와 내 모습을 그려 주었다. 굉장히 감격적인데 당장 줄 것은 없고, 들고다니던 파란 볼펜을 주었다. 그 뒤 만날 때마다 아이는 항상 내 볼펜을 쥐고 있었다. 작은 볼펜 하나도, 이 아이들에게는 큰 선물이 된다.
팔 다리, 신발, 발가락, 목에 걸린 꽃목걸이까지 망설임 없이 그려낸다. 이렇게 재능 있는 아이를 키워주는 환경이 되길 바라게 된다.
이 그림의 제목은 "잘 그렸는데........" ....;;
완성작.... -_- 얼굴만 빼고 보면 정말 훌륭하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을("닮았네." , "특징을 잘 잡았네") 들을 때마다 다소 상처받았지만, 그래도 감격적인 건 사실이다. 등 부분이 찢어진 남방 하나를 4일 동안 계속 입고 있는 아이가 마음에 밟혀, 헤어지는 날, 새로 받은 단체 티셔츠를 깔끔하게 빨아서 건내주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크다.
2. 기증한 학교 건물에서.
새로 지어진 학교 건물,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깔끔한 건물이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계속 바글바글했다.
건물 안쪽에, 부끄럽게도, 기증자 이름이 붙어있다. 저기 보인다. 이화경 ^^
사진 한 장 찍어주면, 우르르 달려들어 구경하며 신나한다. 반창고로 카메라를 수술해가면서도 이 동네 아이들 사진은 모두다 찍어주신 엄옹길 산악대장님. ^^
1학년 아이들 대상으로 교육봉사를 진행했다. 신발도 못 신고 다니는 아이, 찢어진 옷을 매일 같이 입고 오는 아이, 풍선아트를 보여주니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말은 안 통해도, 표정과 행동과 눈짓과 손짓으로 모든 대화가 이루어진다. 눈을 마주치고 미소지으면 세상이 다 행복하다.
교무실로 사용했던, LIBRARY 한 켠에서 사진을 찍었다. 저 너머 보이는 것이 화장실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교무실 창 밖에 매달려 쳐다본다. 교무실 밖으로 한 번 나가면 우루르 따라붙어 "Give me your name" 을 외친다. "RUFA!" 라고 대답해주면 그 이름을 계속 되뇌이면 졸졸 쫓아다닌다. (Rufa는 작년 인도여행에서 받은 내 힌두 이름이다.)
타일벽화를 그려, 학교 외벽을 꾸며 주었는데, 네팔 국기 모양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아이들에게 "Nepal Flag"를 외쳤더니, 어디선가 -_-;; 떼어와서 보여준다. 덕분에 네팔 국기 별 가장자리 개수 하나도 틀리지 않게 벽화를 그릴 수 있었다.
위 네팔국기를 보고 그린, 네팔국기와 태극기의 합체. 우리는 함께다. 를 상징하는데, 아이들도 그렇게 기억해주면 좋겠다.
타일벽화 마지막, 싸인. 내 이름이 선명하다.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다시 만나러, 보러, 갈 수 있겠지?
3. 헤어지는 날.
35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는, 그늘에 있어도 열사병을 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행복했는데, 즐거웠는데, 아이들 미소에 더 많은 것을 받았는데. 헤어지는 날이 다가왔다. 내 마음과는 달리 하늘은 참 예쁘다.
봉사기간 동안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포토프린트로 인화하여 포토보드로 만들어주었다. 이 아이들의 거의 "유일한 유년기의 사진" 이 될 거라고 한다. 어설프게 꾸몄지만,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니 참 행복했다.
첫 만남에서, 아이다운 낯가림으로 서먹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다가와 바싹 붙어 앉고, 내 옆자리 쟁탈전까지 벌일 정도가 되었는데, 이제 헤어진다.
서울에 돌아와 한동안은 아래 동영상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아말, 아준, 다미스타, 아쉬미따, 인디라, 모한, 삐넛, 아니쉬, 수닐 보고싶어 ㅠㅠ
4. 한국에 돌아와서.
가기 전에도 일이 많아 허덕댔고, 돌아와서도 일이 많아 허덕대고는 있지만, 훨씬 마음이 안정된 상태이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힘든 경우도 상당히 많았는데, 네팔에 다녀오니 역시 내 힘듦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시간에 좀 더 열심히 일해서, 좀 더 열심히 벌어서, 저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이 피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국내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그 쪽도 도와줄거다. 몽골의 아이들, 네팔의 아이들, 한국의 아이들, 내가 슈퍼우먼은 아니니 전세계를 돕지 못해도, 나와 인연이 있는 세 나라의 아이들은 돕고 싶다.
좋은 회사에 다녀서 기쁘다. 월급을 엄청나게 많이 주는 회사도 물론 좋은 회사겠지만, 회사 자체가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각에 직원들을 동참시키는 곳이라 좋다. 더불어 덕분에 회사 휴가 기간 동안 네팔에 아이들을 만나러 다녀올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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