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재를 찍다

오랫만의 휴가, 오랫만의 학교.

LEEHK 2008. 5. 24. 23:31

1. 낮 2시. 에르까와 점심.

 

 오랫만에 휴가를 쓰고 학교를 갔다. 원래 목적은 MIT 세미나였지만, 그게 취소된 바람에 에르까와의 점심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에르까는 몽골 국적의 친구로, 88년생이다. 국제언어교육원에 교환학생으로 잠시 와 있었다가 이번 달 30일에 귀국한다. 저녁에는 스승의 날 모임이 있어 송별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따로 점심을 먹었다.

 2004년에는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 하던 17살 꼬맹이가, 어느새 "사탕은 내키지 않아요." 라고 말할 정도로 능숙하게 한국어를 쓰고 있었다. 하나은행 앞에서 길을 건너는데, 지나가던 남자애와 인사도 하는 것이, 학교 6년 다닌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축구 동호회에 들어서 축구도 하고, 어제는 축제라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단다. 일반 한국인 대학생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

 몇 안 되는 미대 친구 중 하나인 딸기도 함께 만나 bistro에서 파스타와 피자, 샐럿을 먹고 후식으로는 맥주를 마셨다. 한국의 광우병 파동이며 중국 성화봉송 사건 등을 그 배경까지 이해하는 것이, 에르까가 나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몽골로 돌아가면, 내가 몽골을 방문하기 전에는 다시 만나보기 힘들겠지만, 마치 내일 다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볍고 즐겁게 악수로 헤어졌다.

 

 

 

2. 오후 4시 반. 인섭이, 준모와 축제 구경.

 

 에르까와 헤어진 게 4시 반, 뵙고 싶었던 교수님 방에 불이 꺼져 있어 아쉽게 10층으로 올라갔다. 개판이 되어버린 과방에 잠시 발끈 했지만, 졸업생인 주제에 참견할 수도 없어 그냥 돌아 나왔다. PC실에는 역시나 내 친구 인섭이가 있었다. 게임 한 판만 하고 싶다는 친구를 억지로 끌고나와 대학교 2학년 이후로 축제 구경을 했다. 2천 원에 구매한 레고 귀걸이가 정말 마음에 들어 설레어 하고 있는데 준모가 등장해 주었다. 동전 던지기 도박-_-에서 11배도 따 보고, 10년 넘게 레파토리가 바뀌지 않는 토목과의 다이빙 행사를 구경하다가, 경영대 옥상에서 한다는 사격부에 가보자고 나섰다. 도저히 6층까지 걸어가기가 싫어서, 포기하려는 찰나, 미대건물에서 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우리 셋 다, 학교 한참 다녔는데 미대 건물은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정말 우리 학교 좁지만 넓다며 신기해 했다. 한참 헤매었지만, 이어지지 않은 경영대 옥상을 쓸쓸히 쳐다보고 돌아왔다. 저렇게 접근성이 낮으니, 사격부도 '우리들만의 축제' 를 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매년 '우리들만의 축제'였던 과 주점으로 돌어갔다.

 축제 마지막 날, 첫 손님으로 맥주를 시키고, 오랫만에 보는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내년에도 행사를 올 때 어색하지 않기 위해 일한다는 2학년들을 불러다놓고 맥주 한 병씩 입에 물렸다. 80년대 학번 선배님들이 오늘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일어나는 것이 더더욱 아쉽긴 했지만, 이미 저녁 약속이 있어 1시간 만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기특함과 뿌듯함만이 느껴질 뿐, 전만큼 아쉽지 않고, 전만큼 설레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현판이 있는 한, 매년 찾아오고 매년 즐거워 하겠지. 내년이면 내 동기가 다 졸업하고 없겠구나 했는데, 윤주현이 돌아온단다. =_= 내년까지는 학교 와도 놀아줄 사람이 있겠다고 생각하니 사실 조금 기뻤다.

 

 

3. 오후 7시 반. 스승의 날 모임.

 

 저녁 약속은 우리 랩실 스승의 날 모임이었다. 오랫만에 뵙는 교수님과, 선배님, 후배님들을 모시고 아지오 옆의 '미세스 마이' 라는 가게의 정원 테이블에서 BBQ와 맥주를 마셨다. 교수님이 예약하신 가게라는데 정말 세련되고 분위기가 좋았다. 예전에 내가 정했던 일반 고기집들보다 훨씬 나았다. 요리의 맛도 괜찮았고, 시원하게 분위기도 좋았다. 그 밑에서 트레이닝을 받던 시절을 지나와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교수님은 예전보다 더욱 자상해지시고 부드러워지신 것 같다. 오랫만에 만나뵙는 오빠들은 여전히 멋지게 살고 계시고, 모 대학 교수님이신 선배 언니분은 여전히 빛나 보이시다, 지금 랩실에서 피땀흘려 고생중인 두 분도 오늘은 다들 정장에 멋드러졌다.

 분명히 대화가 즐겁고 좋았는데, 점점 더 두통이 심해지고 속이 미식거리고 힘들어졌다. 8시간 동안 맥주 세 잔 정도 밖에 안 마셨는데, 술에 취해 이렇게 토할 것 같은 건 아닐거고, 렌즈 때문인가 싶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렌즈를 빼고 나왔는데 점점 식은땀이 흐르고 힘들어졌다.

 1차가 마무리된 시간, 2차로 다들 자리를 옮기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인사를 드리고 빠져 나왔다. 술자리에서 2차를 사양하고 집으로 가는 건 내 인생에서 정말 드문 일이다. 그만큼 힘들었다. 물론, 집이 성남이라 멀어서 간다고 말씀드렸다. 아픈 티는 안 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4. 밤 10시 반. 최근 몇 년 간 제일 힘들었던 귀가길.

 

 음식냄새 담배냄새 가득한 길을 축제 귀가 일파에 휩쓸려 가다가 몇 번이나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눌러 참았다. 간신히 지하철을 타고 문가에 기대어 서 있는데 왠 아저씨가 밀쳐내서 더더욱 힘들었다. 옆에 옆에 빈 자리가 하나 나서 그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 앞에 서 있던 남자분이 팔을 들어 앉으라고 양보해 주었다. 말할 힘도 없어 감사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앉았다. 낮에 학교로 가는 길에, 왠 임산부 분이 들어오시길래 자리를 양보했었는데, 그 복이 여기서 돌아오나 싶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나는 진짜 아픈건데, 술에 취해 힘들어 하는 것 처럼 보인거라면 진짜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을 꼭 감았다. 간신히 잠이 오려고 하는 찰나, "이 열차는 성수행입니다." 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오늘은 진짜 날이 아니구나. 괴로웠다.

 성수에서 한참 서서 다음 차를 타니, 제대로 만원열차다. 잠실에서 갈아타서도 앉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 중에, 오늘 축제 행사에서 나눠준 쇼핑백을 들고 있는 커플이 보였다. "니들도 학교 축제 갔다 여기까지 오는구나. 고생 많다." 라고 혼자 위로하며 도로로 올라왔다.

 평소에는 택시비가 아까워서 피곤해도 버스를 이용하는 편인데, 오늘은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택시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날을 제대로 잡았는지 도로에 택시 잡는 사람들은 많은데 지나가는 택시는 모두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힘도 없어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있는데, 멀리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다가왔다. 막차였다. 기쁜 마음 반, 웃긴 마음 반으로 버스를 탔다. 평소에는 버스가 없어서 못 타는데, 아프니까 택시가 없어서 버스를 타는구나.

 12시 반 쯤, 간신히 집에 들어섰다. 누나를 걱정해 차키를 들고 나오던 참이었던 동생을 안심키기고 방에 들여보낸 뒤,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마 이 날 먹은 건 다 토한 것 같다. 3년 쯤 전 필름이 끊겼던(나는 기억이 안 나고, 옆에 있었던 사람이 내가 토했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기억하는) 그 날 이후로 처음이다. 취한 건 아니고, 체했나, 몸살인가. 그래도 잠은 제대로 자야겠거니 싶어서 씻고 누웠다. 꽤나 즐거웠던 하루인데, 정말 힘들었다.

 

 

5. 그리고 다음 날.

 

 올해 들어, 술 마신 다음 날 부끄럽지 않았던 적이 없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기분이 좋아 마구 들떠있었다면 마찬가지다. 항상 태양이 밝아오는 시간에 침대에 누워 어제 있었던 일을 몸부림치며 괴로워 했다. 너무 들떠 있었다던가, 너무 오바했다던가, 실수를 했다던가, 그런 기억들만 엄청나게 떠올라,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부끄럽지 않았다. 아팠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부끄러울 틈이 없었다. 사실 낮에도 내내 미식거리고 토하고 하다가 간신히 진정되어 잠시 이러고 있는 것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몸이 방어본능으로 아팠던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어제 아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밤 10시 반에 2차를 따라갔다가 12시쯤에 막차가 끊겼다며 괴로워하면서 학교 축제 과 주점에 들어가 새벽 몇 시까지 놀다가, 택시를 타고 들어가던가, 동생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쯤 숙취는 물론이고 어제 했을 수많은 부끄러운 짓에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몸이 아픈 덕분에, 내 정신을 지킬 수가 있었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다행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약속을 잡을 때 하루에 세 건이나 잡지 않고, 피곤할 때 렌즈를 끼지 않으며, 밤 늦게까지 놀지 않을 것이다. 어제 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즐거웠지만,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최악의 귀가길... 2시간 이었다.